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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인터뷰)'내부자들' 이병헌 "따져보면 나도 '여우같은 곰’"

2015-11-11 18:10

조회수 : 1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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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이병헌은 드라마와 영화 현장에서 커나간 배우다. 오랫동안 연극판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과 같은 배우들과는 결이 다르다. 조각 같은 외모로 스타성을 먼저 인정 받은 그는 촬영장에서 연기력을 키웠다. 그렇게 약 25년 간 촬영장에서 부대끼며 연기력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여러 작품에서 연기력의 폭과 깊이를 증명해왔고, 천만 관객도 동원하는 등 티켓파워에서도 막강한 힘을 보여줬다.
 
훨훨 날아가기만 할 것 같았던 이병헌은 지난해 후배 연예인과의 스캔들로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협박을 받았던 입장이었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그간 정성 들여 쌓은 탑에도 금이 갔다. 승승장구만 해왔던 그는 대중의 싸늘한 변화에 두려움이 컸는지 얼굴을 숨겼다. 그런 중 오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내부자들'의 홍보차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됐다.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이병헌을 만났다. 영화 홍보의 장으로 마련된 자리였지만, 민감한 질문이 오갈 수 있다는 점은 배우도 기자도 미리 감지하고 있었다. 이병헌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쉼 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지만, 개인에 대한 질문에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심사숙고했다.
 
이병헌. 사진/쇼박스
 
◇"내게도 '여우같은 곰'같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안상구를 관통하는 문장이 있다. "이런 여우같은 곰을 봤나."
 
안상구는 의리를 중요시 여기는 깡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력 일간지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만큼은 우직하게 믿는다.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흉기' 같은 정보도 이강희에게는 선뜻 내준다. 그 때 이강희는 안상구에게 여우같은 곰이라고 말한다.
 
치밀하게 전략을 짜는 것 같아도 결국 자기 함정을 스스로 판다는 점에서 '여우같은 곰'이라는 표현은 어찌보면 배우 이병헌과 겹치는 문장 같기도 하다.
 
이병헌은 연기를 할 때만큼은 여우같고 치밀하다. 공부를 많이 하는 배우이고 그만큼 책임감을 보이는 배우다. 이병헌과 연기한 배우들은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의 사생활과 사생활이 공개됐을 당시 이병헌과 그 소속사의 대처에는 문제가 많았다. 악수에 악수를 거듭 두던 모습은 미련한 곰을 연상시킨다. 안상구를 연기한 이병헌에게 '여우같은 곰'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물었다.
 
"많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저도 굳이 따져보면 '여우같은 곰'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안상구에게 정을 느꼈어요. 상구는 낭만깡패로 봤어요. 여전히 낭만이 있는 옛날 깡패죠. 이강희를 친형처럼 여기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강희만큼은 끝까지 안고 가잖아요. 바보처럼 늘 당하면서도 말이죠."
 
"세상일이라는 게 상구가 겪는 것처럼 치밀하게 전략을 짜도 뒤통수 얻어맞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면면을 보면 절대악인 사람도 없어요. 객관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해도 인간적인 면도 있잖아요. 그런 점을 봤을 때 상구에게 정이 많이 갔어요. 그래서 실제로 있는 인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안상구와 본인이 꼭 닮은 인물은 아니지만 어딘가 비슷함을 느꼈다는 얘기다. 누구에게도 정감 가는 정치깡패 안상구를 만들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고 교정하기를 반복했다. 전형적인 깡패에 가까웠던 시나리오 상의 안상구 캐릭터에 유머를 가미했다. 비주얼이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낭만과 유머가 있는 깡패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병헌. 사진/쇼박스
 
◇"한계를 느낀 헐리우드 진출…그러나 포기란 없다"
 
극중 안상구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더 높은 위치로 가기 위해 알량한 요령도 부리고,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우직하고 도전적인 면이 강하다.
 
안상구가 그러했듯 이병헌도 목표를 높이 세우고 도전했다. 작품 내적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은 물론 한국이 아닌 미국까지 시장을 넓혔다.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며 노력한 결과 '지.아이.조2', '레드 더 레전드'를 비롯해 '황야의 7인', '비욘드 디시트' 등 전세계 각지에서 개봉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핵심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로 부상했다.
 
이병헌의 활약상은 개인에게도 큰 업적이겠지만, 한국영화의 유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헐리우드에서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고,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누구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작품 끝날 때까지 악수조차 거부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끝까지 눈을 피하더라고요. 인종차별을 받은 거죠. 분개했었어요."
 
인종차별보다도 그를 괴롭혔던 것은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한계였다. 같은 상황을 두고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는 외국 배우와 감독을 보고 큰 벽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연기할 때는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끼겠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촬영할 때는 늘 '더 잘 할 수 있는데'라는 답답함을 느껴요. 한계, 부침이 있어요. 언어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온 환경이나 문화가 달라서인지 저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더라고요. '이런 생각이 든다고?'라는 질문을 한 적이 많아요. 더 많이 부딪히고 부대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한계를 느꼈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국내에서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 중 하나를 고르는 입장에 선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선택권의 폭을 넓히는 배우가 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점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또 연기적으로도 전혀 막히는 것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리라 믿어요. 지금은 그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바깥으로 여러 부침을 겪고 있는 과정에 있는 그는 또 다른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싸움의 대상은 '매너리즘'이었다. 순간순간 괴롭히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했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쉬운 장면에서 영혼 없이 연기했다는 생각이 번뜩 들 때가 있어요. 아무런 감정 없이 연기를 한 거죠. 해왔던 거고 훈련된 부분이니까. 그런 열정 없이 연기를 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려고 좀 저를 꼬집으려고 하고 있어요."
 
배우는 물론 취재진에게도 쉬운 시간은 아니었던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사생활 논란과는 별개로 이병헌이 '내부자들'에서 보여준 연기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내공과 여전히 자신을 채찍질하는 완벽주의 덕인 듯하다. 여전히 그의 연기력은 많은 제작사들에게 어필하고 있고 조만간 또 다른 영화에서 얼굴을 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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