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이보라

bora11@etomato.com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피플)모두가 행복한 소통을 꿈꾼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

2015-10-15 12:00

조회수 : 2,982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사람들이 말할 때 입술에 글자가 같이 보였으면 좋겠다.’
 
청각장애인이었던 한 소년은 학급 회장으로 선출돼 교탁 앞에 서게 됐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 '사람들 입술에 글자가 보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20년이 지난 후 소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교사를 했을때와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단지 직업만 바뀌었을 뿐이지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의 박원진 이사장은 어릴적 열병을 앓고 청각장애를 갖게 됐다. 사립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다 공립학교 임용을 준비하던 중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이 소셜벤처였다. '우리는 빵을 팔기 위해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서 빵을 판다'는 소셜벤처의 가치에 매료됐다.
 
때마침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2012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수상하게 되면서 사회적 기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지난해 2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다. 에이유디(Auditory Universal Design)는 '청각의 보편적 설계'로 누구나 듣는 것으로 인한 불편함 없이 디자인된 사회를 추구한다는 에이유디의 지향점을 의미한다.
 
◇청각장애인의 정보격차 해소에 앞장
 
오프라인 포럼이나 컨퍼런스, 세미나 등 지식과 경험을 넓힐 수 있는 행사는 많아지고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통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이 수화통역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각장애인 26만여명 중 6%만 수화를 주요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면 자녀가 자연스럽게 수화를 배울 수 있지만, 수화를 배우지 못하는 환경에 놓은 청각장애인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책은 수화통역제도가 전부다보니, 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수단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각장애인은 교육으로부터 소외되고 정보 접근능력도 떨어지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은 이러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청각장애인 스스로 편한 의사소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에이유디의 목표다.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은 지난 6월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법을 통한 평등 실현'주제로 열린 ‘한미일 장애인법 심포지엄에서 문자통역 쉐어타이핑을 지원했다. 사진/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서비스는 쉐어타이핑이다. 쉐어타이핑은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강의나 포럼, 학교 및 교회 등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문자통역사나 자원봉사자가 실시간으로 타이핑하면 청중이 이를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자막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에이유디 조합원은 쉐어타이핑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쉐어타이핑 서비스가 필요한 단체 및 모임에 문자통역사나 자원봉사자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지난 8월에는 생산자조합원으로 가입한 씨온드림이 '쉐어타이핑 글래스'를 개발했다. 쉐어타이핑 글래스 서비스는 쉐어타이핑 서비스의 스마트 안경 버전이다.
 
문자통역(속기)사가 타이핑하는 내용이 쉐어타이핑 서버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마트 안경에 전송된다. 스마트 안경에 연결된 출력장치는 자막을 허공에 띄운 것처럼 출력한다. 결과적으로 청각장애인이 안경을 쓰면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가 하는 말을 (안경의)자막을 통해 볼 수 있다.
 
박 이사장은 "쉐어타이핑 서비스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화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안경이라는 디바이스가 추가되는 쉐어타이핑 글래스가 상용화되면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익사업에 수익활동 가능한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이보라 기자
 
박 이사장은 법인의 형태를 두고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는 것과 비영리민간단체 두가지를 고민하다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를 권유받았다
 
사회적협동조합이란 이윤을 추구하는 협동조합과 달리 지역 주민의 권익과 복리 증진을 꾀하고, 취약 계층에 사회서비스와 일자리 등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협동조합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은 공익사업을 40%이상 수행하며 관계부처의 심사를 거쳐 인가를 받아야한다. 조합원의 배당을 금지하고 잉여금의 30%를 적립해야한다.
  
박 이사장은 "사회적 협동조합은 정책전문가, 문자통역전문가, 개발자, 후원자 등 여러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합쳐 청각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다중이해조합원으로서의 역할이 분명했다"면서 "무엇보다 공익사업뿐 아니라 수익사업도 가능해서 지속가능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폐막식에 문자통역서비스를 제공했다. 기획재정부가 지정하는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되면서 기부금에 대한 소득세 및 법인세 감면혜택이 주어졌다. 청각장애인의 ARS 인증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포럼을 기획하는 등 청각장애인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정책제안활동도 벌이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편견 깨뜨려야"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은 지식나눔공동체 북포럼에 쉐어타이핑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진행된 지식나눔공동체 북포럼 375회 <회장님의 글쓰기>강원국 저자와의 생방송 토크 모습. 사진/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박 이사장이 요즘 가장 공들이는 일은 조합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50여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올해 말까지 100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난달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에서 지원을 받아 '소통이 흐르는 밤'을 진행했다. 비장애인까지 합쳐 70여명이나 모였다. 청각장애인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과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방법 등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소통 행사를 통해 에이유디의 활동에 동조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하나둘씩 조합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달에는 서울혁신파크로 이사오면서 이전과 다르게 고정비 부담이 생겼지만 조합원들이 늘어나고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은 못 듣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입니다.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되는 것이죠."
 
박 이사장은 청각장애인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정부의 청각장애인 지원제도도 개선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바우처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지원 관련 바우처 예산을 기관에게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바우처와 문화바우처처럼 청각장애인에게 직접 바우처를 지급해서 본인이 자유롭게 수화통역과 문자통역을 선택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여느 초기의 기업이 그렇듯, 블로그 홍보에서부터 대외활동까지 무엇하나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현재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는 박 이사장을 포함해 총 4명이 일하고 있다. 그는 "자리를 잡게돼 홍보, 회계, IT인력을 채용해 각각 업무를 분담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의사소통하는데 있어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촘촘하게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정책 제안과 인식개선활동을 통해 모두가 더불어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꿈꾼다"고 말했다. 국내의 청각장애인 뿐 아니라 저개발국의 청각장애인을 돕는 기관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 이보라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