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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범

결국 '사초(史草)폐기'는 없었다

재판부, 與·檢 "사초폐기" 주장 일축

2015-02-0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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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이 6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과 관련해 무죄를 선고 받음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대화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여권과 검찰의 논리가 무색해지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 이동근)는 이날 "최종적인 완성본 이전 단계의 초본들은 독립해 사용될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완성된 회의록 파일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며 "속성상 폐기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국정원에서 1급 비밀로 대화록을 생산하기에 이른 상황에서, 대화록 파일은 더 이상 보존·사용가치가 없고, 오히려 최종 완성된 단일본을 전제로 하는 녹취자료의 초본으로서 속성 및 비밀관리 관련 법령의 취재에 비춰 폐기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결재'의 의미를 결제의사와 서명이 모두 있을 때로 규정하며, 해당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그동안 여권과 검찰이 "사초(史草) 폐기"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2013년 6월말 여야가 'NLL포기 발언'의 진위로 공방을 벌일 때,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 있는 대화록 원본을 열람해, NLL 포기 발언이 실제 있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야권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던 정상회담 대화록과 별도로 참여정부 대통령 기록에 별도의 원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던 시기였다.
 
문 의원의 제안에 여야는 참여정부 기록을 열람할 전문가 및 국회의원을 정해, 경기도 성남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에서 수차례 '원본' 찾기에 나섰다. 아울러 녹음 파일 등의 부속자료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 보관해두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권은 'NLL 포기 발언 논란'에 '사초 폐기' 주장까지 더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감추기 위해 대화록을 무단으로 폐기했다"고 공세를 폈다.
 
검찰도 여기에 가세해 수사에 나섰다. 문 의원을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이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삭제된 대화록과 유출된 대화록이 모두 완성된 형태의 대화록"이라며 "어느 한쪽이 사료로서 더 가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판 중에 공소장을 변경하며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으로 비춰지는 것에 부담을 느껴 대화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범행동기를 기입해 야당과 변호인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국정원이 지난 2013년 6월 공개했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진=뉴스토마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용이한 대북 협상을 위해 남겨뒀다는 정상회담 대화록은 역설적으로 여권의 꽃놀이패였다. 2012년 대선을 두 달 가량 앞뒀던 그해 10월 8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속에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앞으로 남측은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라고 했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정국의 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하며 해당 문건을 봤다고 했다.
 
여당은 대선을 앞두고 'NLL 포기 의혹'과 관련해 총공세를 폈다. 야당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지만, 비밀 기록물인 대화록을 입수하지 못해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화록 논란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시 대화록이 정국의 한복판에 다시 등장하게 한 것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었다.
 
그는 2013년 6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여야가 국정조사에 잠정합의하자,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라며 국정원이 보관 중이던 대화록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정상회담 대화록은 그렇게 여권의 필요에 의해 수차례 악용됐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검찰은 수사는 물론 공판과정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모욕주기에 열을 올렸다. 노 대통령을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피고인석’에 앉혔다"며 "오늘의 무죄 판결은 이제 집권여당과 정치검찰에 거짓과 허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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