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함상범

(영화리뷰)'소원', 나의 소원은 평범한 일상입니다

2013-09-25 10:00

조회수 : 2,959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 '소원'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찜찜했고, 불쾌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일명 '나영이 사건'을 상업영화의 소재로 차용한다는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기존 아동성폭행을 주제로 만든 영화들이 보여준 사고 상황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나 쥐어짜는 신파가 머릿 속에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쾌한 감정이 '수 틀리면 깐다'는 독한 마음으로 변질되고 난 뒤 객석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2시간 뒤, 불괘했던 감정이 부끄러웠고, 걱정과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걱정했던 자극적인 묘사나 어줍잖은 신파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영화 곳곳에서 피해자를 위한 배려가 드러났다. 이준익 감독의 성품을 영화만 통해서도 알 것 같았다.
 
특히 작품 속 소원에 대한 뉴스보도 장면에서 '항문' 혹은 '성기'라는 단어가 예상되는 '파열'이라는 문구 앞을 연기자의 다리로 가린 부분은 얼만큼 그가 피해자를 위해 깊이 배려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앞서 '도가니'는 아동성폭행 주범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고발했고, '돈 크라이 마미'는 성폭행 당한 피해자의 모친의 울분과 복수심을 그려냈다.
 
반면 '소원'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와 그의 가족, 가족의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정면으로 풀어낸다. 큰 상처를 감내하면서 이전의 행복했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치열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 극복한 뒤의 희망을 다룬다.
 
특별한 반전도 없고 결말도 뻔히 예상된다. 그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작품을 이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울리려고 하지도 않는데 눈물이 난다.
 
큰 아픔을 겪은 뒤의 소원을 보면 울컥하고, 그 소원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시스템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 때문에 오열하는 미희와 분개하는 동훈을 보면 복받쳐오른다.
 
그렇다고 어둡고 우울한 영화는 아니다. 다소 감정의 과잉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준익 감독 특유의 소소한 유머가 적절히 배치돼 울다가도 웃음이 나고, 거부감이 없다. 슬프면서도 밝은 희망의 빛을 전한다.
 
또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촌스러운 색감은 경상남도의 한 작은 마을이라는 배경과 절묘하게 버무려진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의 열연도 빛나는 대목이다.
 
성폭행 피해자 소원을 연기한 이레, 그의 부친 동훈을 연기한 설경구, 모친 미희를 연기한 엄지원, 그들의 가까운 친구 광식 역의 김상호와 광식의 부인이자 미희의 친구 역으로 나온 라미란 등 모든 배우들의 노력의 흔적이 느껴졌다.
 
연기경험이 전무한 것으로 알려진 이레는 소원의 밝고 예쁜 모습부터,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고통을 차츰 이겨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완벽히 그려낸다. 아이가 다시 웃음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히 들게끔 사랑스럽다.
 
아픔을 겪는 딸을 도우려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미안한 마음에 묵묵히 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훈 역의 설경구는 그가 왜 최고의 배우인지 진정성있는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감시자들', '스파이'에서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은 그이지만, '나의 무기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하는 듯 칼을 갈고 보는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딸의 상처에 같이 상처 받고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에게도 성질을 픽픽내는 으악스러운 아줌마에서 남편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자신을 돕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조금씩 성장하는 미희는 기특하고 대견하다.
 
미희를 연기한 엄지원은 러닝타임 내내 노 메이크업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고, 임신 5개월의 아줌마라는 배역 때문에 6kg을 늘렸다. 여배우로서 많은 것을 포기한 엄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김상호와 라미란, 상담센터 원장을 연기한 김해숙 모두 짧은 분량이었지만 영화를 위한 진심이 엿보여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가 끝나고 설경구는 "한 시간, 일분, 일초 오늘 하루 흩어지는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라는 평범한 일상일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당신이 낭비한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문구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상영시간 122분. 10월 2일 개봉.
 
  • 함상범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