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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의 부동산퍼즐)독소조항 '상가임대차법 2조'..리쌍이 바꿀까

환산보증금 3억원 이하 보호..서울 전세 상가의 25%에 불과

2013-06-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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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암암리에 행해지던 기득권의 횡포. 임차상인들의 운영권을 보호해준다는 선의로 포장됐지만 교묘하게 기득권의 영리만 보호해 줬다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그런데 이법의 악행을 막을 단초를 생각지도 못했던 힙합듀오 리쌍이 마련했습니다.
 
지난달 20일 난데없이 각종 연예 매체와 포털사이트는 갑의 횡포와 함께 리쌍의 이름으로 도배가 됐습니다.
 
리쌍이 소유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이 사건의 발단이었는데요. 이 건물 1층에는 전 주인과 임대차계약을 맺은 서모씨가 곱창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리쌍은 지난해 5월 쯤 이 건물을 인수했고요.
 
서씨는 2010년 말 곱창집 창업을 위해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300만원, 여기에 권리금 2억7500만원을 냈다고 합니다. 인테리어비 1억원은 추가로 지출했습니다. 안전한 운영권을 얻기 위해 이전 임대인과 5년 동안의 장사를 보장하는 내용의 구두 약속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임대인이 리쌍으로 바뀌며 상황은 서씨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건물주인 리쌍이 서씨의 사업장을 직접 사용하기 위해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죠. 총 4억1500여만원을 들인 가게에서 2년 반만에 나가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겠죠.
 
서울시내 상가의 경우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3억원 이하인 경우에만 5년 계약갱신 요구권을 보장받는데요. 하지만 서씨의 환산보증금은 3억4000만원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환산보증금은 상가임대차 보호법상 보증금과 월차임(월세) 중 월차임을 환산계산법으로 산출한 것을 말하는데요. 임차인이 상가임대차보호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환산보증금을 정한 이유는 기준치를 밑도는 임차인을 영세 상인으로 분리해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다는 입법 취지가 깔려 있죠.
 
다시 돌아와서. 리쌍은 서씨와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계약서에 남지 않은 5년간 구두 운영권 보장을 이행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갑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시점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리쌍을 궁지로 내몰았습니다.
 
서씨와 리쌍은 결국 법정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예상대로 법원은 리쌍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리쌍의 멤버 길과 개리가 가게를 비워달라며 곱창집 주인 서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보증금 포함 4490만원을 지급하고 서씨는 건물을 인도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판결이 있던 날 리쌍은 유명 연예인으로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서씨는 생계를 유지할 소중한 터를 잃어버린 것이죠. 모두가 깊은 상처를 남긴 씁쓸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실마리가 보이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상처만 남겼지만 유명 연예인의 사회적, 법적 공방으로 그동안 곪아왔던 상처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문과 인터넷 매체의 연예면은 물론 사회면, 경제면 등 언론은 물론 각종 토론방까지 당양한 경로를 통해 서민 보호의 탈을 쓴 독소조항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2조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죠.
 
환산보증금 기준 3억 이하로 보호대상범위에 드는 상가는 서울시 전체의 고작 2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대료와 보증금이 비싼 서울 도심 핵심 상권에서는 보호대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수치로만 보면 무려 75%가 영세상인이 아닌, 법적으로 보호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부유한 사장님들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초 상가임대차보호법 원안에는 2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원안에는 보호범위를 제한한 2조가 없었지만 2001년 국회 통과 직전 한 국회의원의 주장으로 기습적으로 삽입됐다고 합니다. 그 후 12년간 2조는 기득권의 권리를 보장해줘 왔습니다.
 
임차상가인 사이에서는 임대차보호법 2조로 피해를 본 사장님들의 이야기가 흔히 돌고 있는데요. 하지만 피해자 수가 많지 않아 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수면 밑에서만 발버둥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리쌍 사고가 터진것이죠. 상가 임차인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용기를 내 법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 전국세입자협회 등 관계 단체들은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를 통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재정립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토지정의시민연대는 불편한 진실 한가지를 꺼내보였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진정한 갑은 리쌍이 아니다. 임대인도 아니다. 건물 하나씩 가진 국회의원님들, 당신들의 재산권을 지킨다고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에 2조를 어거지로 끼워 놓은 님들. 그렇게 법 만드신 분들. 이 분들이야 말로 수퍼울트라갑이다".
 
현재 민주당 박영선, 장하나 의원, 진보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임차상가 관계자들은 6월 임시국회를 주시하고 있고요.
 
지난 12년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약자가 아닌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 굳게 닫혀졌던 상가임대차보호법. 만약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그 문이 열린다면, 어쩌면 결정적 열쇠를 힙합듀오 리쌍이 가지고 있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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