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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칼럼)구한말 망국의 역사 떠오르는 한일군사협정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2012-07-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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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최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하 한일군사협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추진절차와 내용 모두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추진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관련자인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을 경질하고, 외교부 관련자들을 문책했다. 그러나 협정 추진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돌아보자.
 
지난 1964년 3월 대한민국 정부는 한일외교 정상화 방침을 밝혔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20년 가까이 흐른 시점이었다.
 
전국의 학생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위는 점점 격화되었고, 참가자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여기에는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이명박 학생도 있었다. 그는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의 한 명이었다.
 
당시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했던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침략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사과할 일도 없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당연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일본 입장에서는 침략한 사실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에 나선 대한민국 학생들에게는 '역사'가 기억에 있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협정이었다.
 
하지만 4.19혁명을 탱크로 밀어버리고 권좌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은 그 답게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명박 학생이 푸른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서게 되는 '6·3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이어 이듬해인 1965년 6월 22일 일본 도쿄에서는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이 체결됐다. 야당이었던 민중당 소속 국회의원 61명이 의원직 사퇴로 맞섰지만 여당 민주공화당은 단독으로 비준동의안을 처리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는 1951년부터 미국의 주도하에 꾸준히 논의된 사안이었다. 그 시작은 한국의 필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일본의 필요에 의해서도 아니었다. 6.25전쟁에 직면한 미국의 국익과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시계를 50년 정도 뒤로 돌리면 현재가 있다. 2012년 현재 '한일군사협정'은 1964년 '한일협정'이 그랬듯이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두 협정은 아주 많이 닮았다.
 
두 협정은 모두 미국의 전략적인 필요에 의해서 논의가 시작되었고, 밀실에서 추진되었으며, 일본은 여전히 침략전쟁을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위안부 등 피해자에 보상에 관심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64년 이명박 학생은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는 것이고,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반대했던 '한일협정'과 아주 쌍둥이처럼 닮은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E.H.Carr는 역사를 가리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과거를 그냥 흘러간 옛날로 치부할 것이라면 굳이 역사라는 학문이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한일군사협정은 또 다른 역사도 상기시켜 준다. 망국의 길로 향했던 구한말 조선 역사다.
 
1882년 6월 9일 조선의 구식군대는 반란을 일으킨다. 바로 임오군란(壬午軍亂)이다. 임오군란은 단순한 구식군대의 반란이 아니었다. 개방과 쇄국을 둘러싼 개화파와 수구파의 권력 대결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임오군란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세력은 자기 나라 땅에 외국 군대를 불러들였다. 반란을 일으킨 군대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왔다. 오늘날 미군기지가 있는 용산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용산미군기지는 고려시대에는 몽골군대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했던 땅이다. 임오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이후 러일전쟁 이후엔 일본군이, 해방 이후에는 미군 기지로 사용되어온 수치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이때부터 너도나도 권력투쟁에 외세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정부는 청나라 군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러자 일본도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군대를 상륙시켰다.
 
그리고 한반도는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외국 군대의 전쟁터가 되었다. 구한말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외세를 끌어들인 정치모리배들에 의해 한반도는 청·일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갔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급격하게 한반도 지배력을 확장해나갔다.
 
미국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의 뒷통수를 친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바로 그것이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용인했다.
 
이후의 역사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1910년 이완용 등 을사오적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기나긴 식민지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는 너무나도 무수히 많다.
 
스탈린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선의로 지옥을 만들었다. 독일 민족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히틀러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먼 나라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독재정권도 결코 스탈린이나 히틀러에 빠지지 않는다. '잘 살아보세'를 외쳤던 박정희는 자신의 '주관적 선의'를 명분으로 숱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인생을, 그리고 삶을 파탄시켰다. 이승만,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자유'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자유만을 의미했다. 
 
구한말의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는 물론이고, 흥선대원군 등 수구파 모두 사익(私益)을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을사오적으로 일컬어지는 이완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방법과 생각이 달랐을 뿐 그들 모두는 나름대로 '애국'을 생각했고, '현실과 실리'를 따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속담이 주는 교훈은 '과정과 결과'의 중요성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선의를 갖고 한일군사협정을 추진하고 있을 것이다. 협정 체결에 찬성하는 정치세력과 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이 악의를 갖고 있다고 예단하는 것은 협정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의 극단적인 이분법이자 관심법일 뿐이다.
 
그러나 선의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선의가 있다하여 과정이 무시되어서도 안된다. 더구나 선의 자체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받는 것도 아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선의가 인정받지 못했듯이 구한말 정치인들의 외국 군대 끌어들이기가 용서받지 못하고, 일본에 나라를 팔아치운 행위가 용서받지 못하고, 일제를 위해 부역했던 자들이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물며 북조선의 '위대한 수령'이라는 김일성과 김정일이라고 선의가 없었을텐가?
 
국익을 위한다는 둥, 아무런 사심없이 결단하고 추진한다는 둥의 겉포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번 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논문을 통해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구한말 망국의 역사를 불러온 정치모리배들과 한치도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은 아직도 툭하면 동북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다. 평화헌법 수호의지도 약해지고 있다. 자위대는 이미 세계적으로 강력한 군대다.
 
동일한 전범국가이지만 독일과 상반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일본, 그 피해자인 한국, 자신의 이익이 가장 우선인 미국, 미국과 맞먹을려는 중국, 아직도 건재한 러시아, 휴전선 너머의 북한,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역사가 이미 가르쳐주고 있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p.s 그나저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기 민족의 근현대사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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