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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철

배추값 잡는 이마트·홈플러스 '선견지명'..현장이 '답'

공무원과 마트 바이어의 차이.."살아남기 위한 절박함"

2012-04-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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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헌철기자] #고공행진 중인 월동배추 가격. 가락시장 도매가(4일 기준)로 1월 855원이던 배추(1포기)는 2월 1020원, 3월 2365원, 4월 3376원으로 각각 13%, 56%, 30%로 두 달 사이 3배로 뛰었다. 지난해 초 5000원대 수준으로 접근하는 중이다. 국내 마트 1위 이마트가 가격 잡기에 나섰다. 5일부터 11일까지 배추 1포기를 1800원에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이마트가 확보한 물량만 10만통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전국 소매가 평균(2일 기준)을 보면 청양고추는 39.1%(100g, 1225원→1704원), 풋고추 38.8%(100g, 1076원→1493원), 시금치 28.0%(1kg, 2641원→3378원) 등 채소가격이 급등했다. 홈플러스는 20여개의 채소 품목에 대해 1년간 전국 최저가를 선언했다. 믿는 구석이 없으면 저지를 수 없는 일이다.
 
상품성 높은 겨울 배추의 출하량이 줄면서 배추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배추 뿐 아니다. 식탁에 오르는 채소들의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 가장 비쌀 때 가장 싸게 파는 대형마트 영업의 비밀
 
때맞춰 대형마트에서는 배추를 포함한 채소들의 가격 인하에 나서자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갑기만 하다. 가격이 한창 오르는 채소를 싸게 판매하겠다는 대형마트들의 간큰(?)영업의 비밀은 뭘까.  
 
이마트(139480)는 5일부터 평소 이마트 물량의 4~5배에 이르는 10만통의 해남 월동배추를 포기당 1800원에 공급한다.
 
월동배추는 연중 배추 맛이 가장 좋다. 특히 해남 월동배추는 찬바람 속에서 겨울 해풍을 꼿꼿이 견뎌내고 자라 맛이 꽉 찬 것으로 유명하다.
 
속이 노랗고 고소한 맛이 적절히 들어 김치, 쌈류에 좋기 때문에 인기가 높지만 폭등하는 가격에 금배추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마트가 금배추를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만사 제쳐두고 배추 앞으로 몰려든다.
 
이에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 3일 고객들이 밑반찬재료로 많이 찾는 20여개 신선식품을 5일부터 연중상시 할인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영업전략이야말로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찾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초 주요 품목마다 책임자를 정하라고 지시해 '배추 국장'이란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에서 물가관리에 실패한 정부 당국이 탁상공론을 벗어나 대형마트의 영업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놀라운 대형마트들의 `선견지명`은 수년간 한 분야를 전문으로 뛰어온 바이어들의 현장감과 직감에서 나온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 이마트, 배추가격 폭등 예상..발로 뛰어 물량 10만통 확보
 
"물가는 주식과 같다. 신이 아니고서는 잡기 힘들다. 다만 현장 경험에서 본능적으로 나오는 감각적 판단과 노하우가 남보다 더 싸고 좋은 제품을 선점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이마트 배추값 할인 판매의 주역인 채소바이어 정희성 과장의 말이다.
 
정과장은 채소분야에서만 10년을 근무한 이 분야 전문가다.
 
"신만이 물가를 잡는다."라고 겸손하게 표현은 했지만 정 과장은 연말부터 배추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해왔다.
 
이상 기후로 한파가 몰아치던 2월, 전남 해남을 찾은 정 과장은 전년 배추값 폭락에 따른 농가의 면적지가 평년에 비해 10%이상 감소했고 배추의 상품성 역시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한달간 주말을 포함해 10일 이상을 해남에서 보낸 정 과장은 본능적으로 월동 배추의 가격 폭등을 직감했다.
 
정 과장은 "배추는 2일 정도의 강추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올해처럼 4일 이상의 한파가 몰아치면 상품성이 떨어져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좋은 배추를 찾는 소비자들의 증가로 결국 배추 값의 상승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드넓은 눈밭을 뒤져 상품성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농작을 고민하고 있는 농가를 상대로 배추를 구매했다. 이 시기가 3월초다.
 
이마트는 확보한 10만통의 배추를 수확했지만 곧바로 출하하지 않았다. 배추 가격이 가장 폭등할 시점을 4월초로 예측하고 출하시점을 조정했다. 이 역시 경험에서 나왔다.
10만통의 배추가 소비자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저렴하게 공급될 수 있었던 이유다.
 
홈플러스도 비슷한 현장 경험과 노하우가 '채소값 1년 최저가 선언'의 밑바탕이 됐다.
 
차이가 있다면 홈플러스에는 물가 변화를 분석, 예측하는 테크니컬 매니저(TM Technical Manager)와 바이어가 2인1조로 상황을 판단, 구매한다는 것.
 
◇ 홈플러스, 테크니컬매니저와 현장바이어 2인3각 물가상황 정확히 예측
 
지난해 홈플러스 채소팀 김성수 바이어와 이태민 TM은 경남 진주에 위치한 청량고추 산지에서 산지 책임자와 한 자리에 모여 최종 합의를 했다.
 
이태민 TM은 최근 한반도 남부지역 평년 일조시간 부족, 지속적인 유류값 상승,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 등의 이유로 가격 상승을 예측했다.
 
산지 청량고추의 사전 계약을 통해 고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청량고추를 제공해야 한다며 김성수 바이어에게 분석내용을 제공하고 함께 산지를 방문했다.
 
산지 책임자는 "최근 일조량 부족과 청량고추와 같은 가온작형(하우스) 과채작물은 생육 유지를 위해 낮에서는 22~25℃ 유지, 밤에는 18~20℃를 유지해야 하지만 유류값 상승으로 상품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청량고추는 다른 작물보다 인건비가 많이 드는 작물이고, 점차 농가가 노령화되면서 청량고추 제배에 동원하는 인력들이 힘이 덜 들고 따기 쉬운 애호박, 풋고추, 파프리카 등의 작물로 이동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가격인상이 불가피했다.
 
특히 몇년 사이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이라는 이유로 파프리카의 비중을 높이고, 청량고추의 비중은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산지의 하소연에 청량고추 가격인상은 당연한 듯 했다. 
 
그러나 김성수 바이어는 "홈플러스의 자체 투자와 안정적 출하처를 산지에 제공하겠다"며 책임자를 설득했다.
 
가격인상을 막아도 문제는 또 있었다. 상품의 품질. 10cm 정도의 상품이 최고로 대접받는 청량고추를 요구하는 홈플러스와 8cm 정도 크기의 청량고추도 출하하겠다는 산지 책임자간 합의를 통해 8cm이상의 청량고추도 함께 출하하기로 했다.
 
산지에서의 책임자와 홈플러스 바이어와 TM의 합의 과정을 통해 홈플러스는 청량고추 가격이 상승함에 불과하고 자체 투자와 안정적 출하처 제공, 적정수치가격 보장 등을 통해 산지의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저렴한 가격의 청량고추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유통구조 4단계(산지 → 경매시장 → 도매업자 → 소매업자)를 2단계(산지→홈플러스)로 줄인 산지 직거래를 통해 중간 유통마진을 줄였기 때문에 봉지당(130g/봉) 1750원의 저렴한 청량고추를 고객들이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분석, 현장요원의 노력.."관료도 배워야"
 
시장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분석, 그리고 산지 책임자 노력이 싼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채소를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20여개의 채소값 인하가 모두 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싸게 팔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홈플러스 김성수 바이어는 "작년부터 적합한 청량고추 산지를 발견하기 위해 돌아다녔다"며 "고객들이 많이 찾는 신선식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산지 협의를 통해 가격 예측을 통해 물가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홈플러스는 연간 100억원 규모의 자체 가격투자를 통해 5일부터 20여개 주요 신선식품을 대상으로 1년 내내 전국 최저가격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유통 관계자는 "국가의 전체 물가를 컨트롤 하는 공무원과 사기업 바이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장감과 전문성,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 같다"고 농산물 수확량 예측과 물가관리에 실패한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관료든, 정치인이든 배울 건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현장에 가서 악수만하고 돌아오는 이벤트만으로는 절대 민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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