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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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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지스타에서 시차 적응하기

2023-11-16 08:48

조회수 :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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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새벽 2시 56분. 저는 부산의 한 호텔에서 시차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웬 시차 적응이냐'는 반응이 예상되네요. 하지만 이건 게임 좋아하던 초등학생 이범종이 '게임쇼 취재하는 게임 기자'가 된 미래로 시간 여행에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1998년 봄. 경기도 구리시 동신문고 1층 진열대에서 'PC 챔프' 4월호를 처음 들었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합니다. 비닐에 싸인 묵직한 책 표지엔 각종 게임 제목이 환상의 나라로 데려갈 마법 주문처럼 적혀있었고, '정품 부록'이 적힌 번들 CD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임진록'을 준다는 안내에 첫 전문지 구매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구로구 넷마블 지타워 앞에 오락기 위에 가방 올려두고 게임 하는 어린이 조형물이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저는 처음에 게임 CD 받으려고 산 이 잡지의 기사를 읽으면서 게임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게임엔 무언가를 극복해야 할 주인공의 사연이 있고, 그 과정을 내 힘으로 끝낸 뒤의 여운이 영화보다 깊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했지요. 이런 생각을 가능케 한 건 여러 기획 기사와 연재물 덕분입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이 현대 게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하는 기획 기사도 있었고요. '병찬이의 게임 일지'처럼 실제 인물인 중학생 병찬이가 담당 기자와 함께 게임 속 세계를 누비다 현실로 탈출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연재도 있었지요.
 
저는 E3 같은 국제 게임쇼 취재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미국 본사 탐방기 등 생생한 현장 취재도 동경했습니다. 무엇보다 PC 파워진(PC 챔프의 바뀐 이름) 기자의 하루를 보여준 특집 기사가 꿈속에 자리했습니다. 게임 업계 사람들을 만나 게임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도 쓰던 그의 일상이 어찌나 부러웠던지요.
 
하지만 IMF 외환위기와 저작권에 둔감했던 사회 분위기로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은 2003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온라인 게임 시대가 열렸습니다. 물론 PC 파워진을 비롯한 게임 잡지들이 최신 인기 게임 번들 제공 경쟁을 하면서, 사람들이 굳이 패키지 게임을 구입하지 않고 부록 제공을 기다리게 한 측면도 있습니다.
 
다룰 수 있는 패키지 게임 이야기가 사라진 2005년, PC 파워진이 모회사(제우미디어)가 같은 온라인 게임지 '넷파워'에 통합됐습니다. 어느새 게임 전문지 기자의 꿈은 사라졌고, 군 제대 후 학교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며 신문 만드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올해 게임 기자가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할지, 우주의 기운이 저를 향했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2023년은 도박판으로 조롱받던 한국 게임 산업이 정통 패키지, 그것도 콘솔 게임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뜻깊은 해입니다. 네오위즈의 소울라이크 게임 'P의 거짓'이 100만장 팔렸는데 그 중 90만장이 해외에서 팔리며 세계에 '잔혹동화 IP'를 각인시켰습니다. 이 작품은 피노키오가 무한히 죽음을 반복하며 유한한 인연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서사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배불뚝이 다이버의 유쾌한 바다 탐험을 보여줘 200만장이 팔렸고요. 두 게임 모두 패키지 게임의 강점인 서사를 높이 평가 받았는데요. 게이머가 그 이야기의 결말을 끝까지 보게끔 이끌어가는 게임성 역시 일품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습니다.
 
이범종 기자와 최지원 ‘P의 거짓’ 총괄 감독이 15일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 수상 축하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네오위즈)
 
15일 P의 거짓 후드티를 입고 찾아간 '2023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이 작품이 대상을 받은 순간, 저는 전날 밤 생각해 둔 제목이 아른거렸고 이게 꿈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보도된 기사의 제목은 '"심장이 고동친다" 2023 게임대상 'P의 거짓''입니다. 이는 주인공 피노키오가 인간성을 얻은 최종 단계를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한국 게임의 역사가 20년 만에 맞이한 대전환기를 제 이름으로 기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스타 개막을 앞둔 새벽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최우수상을 탄 '데이브 더 다이버'를 비롯해 연말 출시 예정인 '창세기전' IP 활용작도 한국 패키지 게임의 부흥을 이끌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최근 네오위즈가 출시한 '산나비'도 극찬받고 있는데, 조만간 이걸로 '뉴게임+' 꼭지 기사를 써야겠습니다.
 
소년의 타임머신은 이렇게 25년 만에 꿈꾸던 미래에 도착했습니다. 그간의 좌절과 위로받지 못한 상실 모두, 이곳에 도착하기 위한 연료였습니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은 최지원 P의 거짓 총괄 감독은 물론, 축하연에서 만난 그에게 작품을 논하고 함께 사진 찍은 저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저에게 타임머신을 내어 주신 <뉴스토마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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