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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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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종 시대…노무현이 던진 화두 '시민주권론'

'대화·소통' 사라지고 '갈등·혐오'만 남은 한국 정치

2023-05-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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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제가 생각하는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꼬락서니의 경상도 방언)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 시민들이 할 몫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여입니다." (지난 1988년 7월 13대 초선 국회의원 시절 첫 대정부 질문)
 
깨어 있을 때만 '국민 주권'이, 깨어 참여할 때만 '시민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침입니다. 공정이 무너지고 정의가 갇힌, 정치가 실종된 지금 우리 시대의 탈출구로서의 묘안임이 틀림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14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이 오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꿈은 후대의 과제가 됐지만, 현실은 상식과 합리가 실종되고 망국적 병폐로 꼽히는 극단적 대결 정치만 남았습니다. 대화와 소통이 사라지고 극한 갈등과 혐오만 남은 정치 실종의 시대,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깨어 있는 시민 '시민주권론'이 필요한 때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시민들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노무현 기념관)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정신 사라지자…역대급 '정치혐오증'만 남았다
 
2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한국 사회의 정치는 실종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가 많으면서 민주주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실제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여당도, 야당도 싫다'는 무당층 비율은 30%에 육박합니다.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19일(16∼18일 자체 조사) 결과를 보면 무당층 비율(29%)은 민주당(33%)과 국민의힘(32%) 지지율에 육박했습니다. 지난 4월 첫째 주부터 5월 셋째 주까지 무당층 비율은 27∼31% 사이를 오갔습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 지지율이 31∼35%, 민주당이 32∼37%(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대 정당 지지층에 버금가는 무당층 비율을 알 수 있습니다.
 
무당층 비율은 1년 새 두 배가량 늘었는데요. 급격한 무당층 증가엔 역대급 정치혐오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 구현보다는 여야 간 당리당략에 의한 힘 대결은 물론,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정치의 역할이 실종되면서 거대 정당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는 분석입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1·2·3당 중에는 대안이 없으니 무당층이 늘어가는 것"이라면서 "꼭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정당들이 서로 혹은 안에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느니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이 커져만 가고 정치가 실종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팬덤 정치와 다른 '깨어 있는 시민'…통합·실용주의 첫발
 
정치권에서는 정치 실종의 시대, 노 전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시민주권론'을 꺼내듭니다. 소통과 협치가 없는, 제로섬 게임인 정파적 진영 논리만이 남은 정치 현실에서 결국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힘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참여라는 설명인 셈이죠. 노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선거구제 개편, 지방분권 등의 동력도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습니다. 
 
다만 최근 일각에서 나타나는 지나친 정치 참여, 소위 강성 지지층들이 보여주는 '팬덤정치'는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즉 시민주권권이 오용되면서 진영 논리에 따라 편 가르기가 지나치다는 지적인 것이지요. 예컨대 '개딸'(개혁의 딸·이재명 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층), 태극기부대(강경 보수 지지층) 등이 대표적입니다.
 
실제 최근 거액의 가상자산(코인) 보유 논란으로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비판하며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한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이날 개딸에게 받은 비방과 욕설로 가득한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는데요. 이 의원은 개딸의 행태를 지적하며 이 대표를 향해 팬덤정치를 끝내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같은 당 김종민 의원 역시 이날 개딸들을 향해 "명백한 정치 폭력"이라며 "이를 방치하는 일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정치 원로들 역시 정치 실종을 우려하며 여야 대표에게 국민통합을 강조합니다. 이석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협의회 결성 39주년 기념식에서 "정치권에 대화가 실종됐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 민주당도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강성 당원이 나서서 뭇매를 보낸다. 누가 나서서 말하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권노갑 민추협 이사장 겸 민주당 상임고문은 "오늘날 우리나라는 민주국가가 됐지만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는 여야의 정쟁, 그리고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으로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국민통합을 이뤄 새로운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데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권노갑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협의회 결성 39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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