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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원

언행불일치

2023-03-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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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누구든,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법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라고 일컬어지는데요. 이렇게 ‘말할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말이 특별히 눈에 띄려면 기술이 필요합니다. 말이 잘 전달될 통로를 시의적절하게 확보하는 것은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민주당에서 두드러지는 말이 있습니다. ‘수박’입니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을 낮잡아 이르는 이 단어가 민주당의 중심에 섰습니다. 지난달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된 날 전후를 기점으로요. ‘개딸(개혁의 딸)’이라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이런 결과가 비명계의 ‘비토’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연일 ‘수박 깨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개딸의 외침이 크게 울려 퍼지는 이유는 단순히 이들의 쪽수에만 있지 않은 듯합니다. 우선 말의 통로가 많고 강력합니다. 의원 개개인에 보내는 문자부터 당원 게시판까지, 목소리를 낼 곳이 다양한 데다 효과도 좋은 겁니다. 특히 당원 게시판은 지지층의 ‘화력’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부각하기에 아주 유용한 장소입니다.
 
최근 이 대표는 개딸들을 향해 수박이라는 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이 내홍에 휩싸인 상태에서 ‘내부 총질’을 멈추고 단합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이런 말의 진정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표가 개딸들이 목소리를 내는 통로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계추를 2021년 12월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민주당 당원 게시판은 한 달간 폐쇄됐습니다. 당 지도부의 결정이었습니다. “완전히 공론장 기능을 상실하고, 일종의 욕설과 말의 배설구가 됐다”는 것이 이유였죠. 공교롭게도 그때는 대선후보였던 이 대표를 향한 비난이 게시판에 쏟아졌던 시기였습니다.
 
이 대표가 진정 개딸들에 ‘수박 자제’를 주문하고 싶다면, 2년 전 마지막 달에 내려진 조치에 상응하는 행동이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말뿐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면 이 대표도 강성 지지층을 만류하는 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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