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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세상 마음 편한 피고인

2023-02-25 06:00

조회수 : 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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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한 보험사의 주식가치평가보고서를 부풀려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은 한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에 대한 공인회계사법 위반 선고공판 참석 후기입니다. 선고는 이달 초에 있었고 당시 재판에 참석했었는데요. 그 때 봤던 인상 깊고도 물음표 가득했던 한 장면에 대해, 최근 느낌표를 얻어서 이리 늦은 후기를 씁니다.
 
제목에서 이미 아시겠지만 인상 깊었던 그 장면은 피고인의 여유로운 태도였는데요. 막연하게도 제가 회계사라면 공인회계사법 위반 재판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날 재판에 갔습니다. 그렇게 피고인들에게 한껏 감정을 이입하면서 재판을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어디서 아주 한가로운 농담이 들려오더라고요. 엄숙한 재판장 앞에서 저리 여우로운 태도라니. 귀가 쫑긋했습니다. "오늘 왜 이렇게 법원 앞에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지지자들이더라?"하는 대화였습니다. 그날 마침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입시비리 선고가 있었거든요. 이 때문에 조 전 장관 측 지지자와 보수 측 지지자들, 취재진들로 법원 앞이 제법 시끌시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취재온 기자도 이리 긴장되는데, 저리 한가로운 대화를 하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증이 스쳤습니다. 아마도 오늘 이 재판장에서 열리는 여러 재판 중 한 재판을 방청하러 온 사람이겠구나. 말쑥하게 정장을 입은 걸 보면 단순 방청을 하러 온 사람이라기보다 변호사인 것 같은데, 그럼 저렇게 마음 편히 있진 않겠지. 여러 생각을 하던 차에 선고 시간이 됐고, 재판장에 들어갔습니다.
 
꽤 키가 크고 함께 몰려 있어 눈에 띄던 그 무리도 저와 같이 재판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왠걸. 그 분들, 피고인석에 가 앉더군요.
 
너무 놀라 잠시 멍했습니다. 피고인들이 저럴 수가 있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 건 아닙니다. 그저 태연한 그 태도가 과연 형사재판 피고인의 태도일 수 있나 하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판사는 주문을 하기 전까지 결과를 단정하지 않고 판단의 과정을 설명했지만, 듣지 않아도 결과는 예상이 됐습니다.
 
의문 가득 충격 가득한 마음을 안고 법원을 나선 지 2주 정도가 지나서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 때 취재차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한 회계사를 통해섭니다. 우리나라 회계법인의 현주소, 주식가치평가에 관한 히스토리를 말하던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본시장 선진국이라고 하는 데서도 가치평가 보고서로 회계사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더라"더군요. 왠만한 위법행위가 아니고서야, 사법부가 회계사 고유의 업무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고요. 회계사가 소정의 절차를 지켰다면 가치평가의 질과는 관계 없이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회계사 개인의 의견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며 저는 다시 2월 초 그날의 법정으로 가 있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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