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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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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인터뷰)연상호 감독은 처음 ‘정이’를 이렇게 시작했었다

오래전 단편소설로 준비한 ‘정이’, 우연히 강수연 이미지 더해 ‘상상’

2023-0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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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실 영화가 공개도 되기 전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기사화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의 연출과 시나리오를 쓴 감독과의 인터뷰이기에 스포일러가 너무 많이 언급됐었습니다. 스포일러를 제외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기사화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화 자체가 몇 가지 포인트에서 스포일러를 피하고 언급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불가분하게 인터뷰를 마친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기사화를 시작합니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쓰고 연출한 연상호 감독입니다. 연상호 감독이 정이를 기획한 것은 꽤 오래전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이는 사실 처음부터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영상화를 고려하고 준비했던 건 아니었답니다. ‘꼭 만들어야지란 마음으로 쓴 게 아닌, 작가로서의 정체성에서 시작한 아이디어 차원의 단편 소설이었답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정이가 영상화로 제작이 결정되고 실제 작업이 이뤄지면서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상상을 실현시키고 구현시키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에 뚜렷한 호불호가 나뉘면서 정이의 이슈화는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이가 공개된 뒤 꽤 시간이 흐른 요즘 연상호 감독과 나눈 정이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 수 있게 됐습니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가장 먼저 이름이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정이란 이름. 극중 주인공 윤정이정이에서 따왔습니다. 극중 프로젝트 이름도 ‘JUNG E’ 입니다.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 때문에 처음 연상호 감독이 글로벌에서 쉽게 불릴 만한 작명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렇게 지은 것은 또 아니랍니다.
 
일단 정이는 한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목은 그 인물의 이름이 돼야 맞을 것이란 판단이었죠. 그럼 주인공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처음 단편으로 구상을 할 때부터 그냥 막연하게 가장 한국적인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 정이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그때는 당연히 영상화에 대한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름이 그냥 떠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영상화가 결정되고 나니 외국에서도 쉽게 부를 수 있을 이름 같아서 마음에 듭니다.”
 
정이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합니다. 이 영화 속 뛰어난 가상의 미래 사회 풍경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할리우드 유명 영화. 이른바 레퍼런스로 불릴만한 작품들. 그래서 정이이 공개가 되자 마자 열광하는 마니아층 그리고 이 영화를 비판하는 영화 마니아들이 격돌했습니다. 이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생각은 예상은 했었다였습니다. 두 진영이 나뉘어 싸우는 걸 예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호불호를 나뉘는 경계의 실체를 예상했단 겁니다.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이 영화는 정확하게 말하면 SF가 아닌 사이버펑크 장르에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에요. 쉽게 말하면 공각기동대라든가 블레이드 러너. 제 생각에 사이버펑크 장르는 따라하기가 아니라 하나의 룩(look)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좀비가 나온다고 다 표절이라고 하진 않잖아요. 사이버펑크도 어떤 특정 룩을 그려가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한 정이의 사이버펑크는 클래식에 가까운 사이버펑크 룩이었어요. 그래서 일부에선 정이를 보면 감독의 연식이 보인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런 말을 실제로 들었어요(웃음)”
 
정이가 화제를 모았던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강수연이 무려 12년 만에 선택한 상업 영화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였습니다. 강수연은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대한민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강수연을 단번에 사로 잡은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일단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강할 것 같은 배우란 이미지는 정말 오해랍니다. 부드럽고 부드러운, 그리고 그 안에서 강함이 존재하는. 그런 배우가 강수연이었다네요.
 
“’지옥을 작업하고 있을 당시에 우연히 정이를 다시 꺼내서 읽어봤어요. 문득 고전적인 멜로에 SF가 결합되면 어떨까 싶었죠. 그 안에서 그려지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존재감이 스쳐지나 갔어요. 그런 이미지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강수연 선배 외에는 달리 답이 없었어요. 강수연 선배를 대입해서 정이를 그려보니 이 작품은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죠. ‘지옥을 함께 한 양익준이 강수연 선배와 인연이 있다고 해서 전화 번호를 받아 장문의 문자를 보냈죠. 근데 읽씹을 하셨어요(웃음). 나중에 왜 그러셨냐 물어보니 이 사람이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하지. 스팸이구나라고 생각하셨데요. 하하하.”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은 고 강수연을 캐스팅했고,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안심했답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을 앞두곤 덜컥 걱정이 앞섰다 하네요. 일단 강수연은 1970~80년대 배우입니다. 그 시절 연기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에 깊에 박힌 배우일 것이라 확신했답니다. 당시 연기는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 미덕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정이는 절제와 절제를 거듭해야 하는 스토리 라인입니다. 현장에서 강수연에게 주문한 내용이 그래서 특별했고, 그걸 소화하는 강수연의 모습에 전율이 돋았다네요.
 
제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간곡하게 부탁드렸어요. 진짜 무례함을 감안하고 절대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부탁드렸죠. 너무 대배우고 대선배님이라 제가 아무리 감독이지만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저도 너무 부담이 컸죠. 그런데 그걸 전부 소화하시면서 감정을 눌러 담으시는 모습에 제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더라고요. 그러다 나중에 한 번에 폭발을 시키시는 데 온 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진짜 대배우는 대배우이구나 싶었죠.”
 
정이가 기존 할리우드 로봇 영화들과 다른 점을 꼽자면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통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정이는 자신이 로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계속되는 고통을 느낍니다. 이런 점은 정이가 다른 로봇 영화, 나아가 연상호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사이버펑크 장르 속 인간에 대한 정서적 고찰에 대한 심오한 질문까지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극중에서 정이는 복제품이잖아요. 실제 정이는 죽어도 죽지 않은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고. 로봇 정이들은 병원에 누워있는 정이의 뇌를 복제해 만든 복제품들이죠. 그 복제품들이 실제로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하고 통제된 상태에서 고통까지 느끼고. 그 과정에서 완벽한 통제를 보여주고 싶었죠. 하지만 그 완벽한 통제를 깨트리는 게 정이의 딸 서현(강수연)이잖아요. 로봇 정이를 탈출시켜 주잖아요. 탈출한 정이는 복제품일 뿐인데. 반면 진짜 정이는 병원에 누워있고. 새로운 인류? 완벽하게 다른 정체성의 탄생이 시작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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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의 마지막 장면은 일종의 해방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로봇 정이가 완벽한 통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첫 페이지가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입니다. 그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유작으로 세상을 떠난 고 강수연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 듯 했습니다. 묘한 감정의 파고였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생각 그리고 정이의 후속편 계획이 궁금했습니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정이는 전투 용병 윤정이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지만 사실 내용적으론 그의 딸인 윤서현의 자전적 스토리라고 봐야죠. 정말 저도 나중에 느낀 거지만 후반작업을 하고 시사회를 하면서 다시 보니 강수연 선배님의 얘기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어요. 극중 서현이 로봇 정이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꼭 자신에게 하신 말씀처럼 들렸어요. 선배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죠. 그리고 전 항상 후속편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합니다(웃음). 정말 지금의 결과물보다 더 멋진 후속편을 만들 자신이 있을까. 그 자신이 생길 때 후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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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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