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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자신의 이야기로 가사를 쓴다는 것

2023-02-02 16:47

조회수 :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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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K팝 아이돌 음악의 작곡·작사 시스템은 마치 거대한 조립 공장 같아요."
 
최근 만난 한 작사가 A씨는 자신의 경험담에 비춰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뮤지션의 정신이 반영된 음악? 인간미가 느껴지는 음악? 그건 이미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고요. 지금은 그저 뮤직 비즈니스 판인 거예요."
 
국내 유명 음악가인 A씨가 K팝 산업과 협업을 시작한 건 3~4여년 전. 유명 아이돌 그룹의 곡 제의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지만, 막상 회의에 회의를 거치다보니 자신을 어느정도 버려야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A씨에 따르면, 최근의 아이돌 음악 제작 방식은 보통 글로벌 작곡, 작사가들과 협업으로 이뤄지는데, 이게 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파트별로 구획을 나누고 배분을 하는데, 보통 저명도가 있는 글로벌 작사가들이 콘셉트를 미리 정하고, 그것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영어 표현은 꼭 빼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그러다보면, 제가 원하지도 않는 표현에 맞춰 가사를 덧붙여야 하는거죠. 그렇게 조립식으로 끼워진 음악들이 세상에 나오는 거고요."
 
이런 공장식 정체 불명 가사들이 내부 검수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으면,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뉴진스가 발표한 곡 '쿠키'의 경우, 선정성과 성상품화 문제에 휩싸인 것 또한 이 같은 제작 과정에서 '미스' 부분이 있었던 겁니다. 멤버 5인이 10대인 미성년자임에도 외국문화에선 '성적 암시'로 쓰이는 관용적 표현을 그대로 넣어 문제가 됐습니다. 
 
BTS의 '버터' 역시 멜로디의 핵심 부분이 이중계약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2019년 루카 드보네어라는 네덜란드 DJ 겸 가수의 곡 'You Got Me Dow'에 팔았던 멜로디를 2020년 '버터'에 재차 팔은 것인데, 법적 문제가 없고 차트와 팬덤 중심의 세계적인 성과를 들먹여도 향후 음악적인 재평가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음악계 루키로 부상 중인 R&B싱어송라이터 오션프롬더블루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체 장애를 지닌, 2살 어린 친동생에게 바치는 헌정 곡을 써보려 7년 간 노력했지만 잘 안됐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너무 과하지도 가볍지도 않게' 담담하게 담아보고 싶어서 노트에 썼다지웠다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마음으로 쓴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 법입니다. 최근 또 만난 글로벌 음반 유통사 B씨의 말입니다. "작곡-작사가도 아닌, 기획자가 전면으로 부각돼 자칫 음악이 곡해되는 요즘의 분위기도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음악가들의 정신을 좇아 음악을 듣던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빵빵 터지는 K팝 열풍 이면 가려진 문제의 작업 방식들을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조금 더 다양한 장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외국 작곡가에 의존하기보단 K작곡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합니다.
 
'언제부턴가 난 내 영혼을/내 소중한 소리에 금액을 매겨/팔기를 시작했어...라스베가스 도박판을 방불케 하는 숨막힌 한 판/ 중심은 돈이고/단지 넌 소비자라는 이름의/타깃일 뿐이고.'
 
서태지는 2004년 7집 'The Issue'의 수록곡 'F.M Business'에서 음악의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비즈니스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진짜 음악으로서의 가치라는 얘기입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음악을 듣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서태지가 2004년 발표한 정규 7집 '라이브와이어' 앨범에 수록된 곡 'F.M 비즈니스' 뮤직비디오 한 장면.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의 화살을 맞는 비즈니스 음악판을 그리고 있다. 사진=서태지 'F.M 비즈니스' 뮤직비디오 캡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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