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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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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이정재 다시보기

2022-09-15 18:07

조회수 :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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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이 에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 선을 보인 시기가 지난해 9월이었으니, 딱 1년만의 성과다. 오징어게임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파장이야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이정재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젊은 남자'라는 영화로 시작한 모델 출신 배우 이정재는 1995년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등의 신인상을 거머쥐며 충무로에 화려하게 발을 내딛었다. 초기에는 시월애, 선물, 순애보 같은 멜로영화로 이력을 쌓아갔다.  
 
2013년작 '관상'에서 "내가 왕이될 상이오?" 라는 수양대군의 대사와 2015년작 '암살'에서 독립운동가에서 변절한 밀정 염석진의 "내 몸속에 일본 놈들의 총알이 있습니다" 대사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회자됐다. 특히 영화 신세계에서는 경찰과 조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마는 경찰 출신 조폭 이자성을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흥행배우였던 것같이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그의 필모그라피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영화를 흥행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박대박', '불새', '알바트로스', '인터뷰, '이재수의 난', '흑수선', '1724기방난동사건', '빅매치', '인천상륙작전', '대립군',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같은 소위 흥행에 참패하거나 혹평을 받은 영화도 많다.
 
2022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 (사진=연합뉴스)
 
오랜 시간 연기라는 외길만을 걸어온 그가 유색인종에게 금단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에미상을 수상한 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다. 그가 20여년 넘게 한 길만을 걸어온 일종의 '장인(MASTER)'이라는 점이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연기에 묵묵히 전념해온 그의 이력이 아시아 최초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장인만 장인은 아니다. 한 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수많은 이들도 장인이다. 버스 기사, 열쇠공, 미화원, 야구르트 아줌마 등등… 그들은 단지 배우 이정재처럼 '오징어게임'이라는 일생 일대의 최고의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뿐 그들의 삶과 생활,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배우 이정재처럼 오징어게임이라는 최고의 드라마를 만나 영예를 누리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세상에는 오징어게임을 만나지 못한 수많은 배우들이 존재하며 한길을 걸어온 장인들이 수없이 많다. 특출나게 눈에 띄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의 삶도 귀하디 귀한 인생 아닐까. 한 가지 직업에 몰두하며 외길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외롭거나, 폄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보면 다소 어리숙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일지 몰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며 인생이다.
 
내 인생의 오징어게임이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 외골수 같은 삶이라 해도,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 말자. 한 길만 걸어가는 나는, 또 우리의 삶은 푹 삶은 사골국을 닮았다. 자극적인 맛 없이, 또 어쩌면 소박할지 모르지만 진한 깊이가 있지 않은가. 오늘 하루도, 어제에 이어 한 길을 걸어온 나를 포함한 그대들이여. 모두 수고했다.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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