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오! 해피데이!

2022-04-08 11:58

조회수 : 431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지금이야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생명 존중'으로 많이 모아졌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유물 또는 식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른바 '보신탕'이 대표적인데, 수술환자나 허약체질자를 위한 보양식이라는 명목으로 전통시장에 가면 '개고기'라는 간판을 내 걸고 생육을 파는 집들이 한두집씩은 꼭 있었다. 그정도로 '보신탕'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관대한 편이었다.
1900년대 말, 필자가 군복무를 할 적에는 '보신탕'이 아예 일반적이었다. 특히 군의 경우 업무 자체가 워낙 격하고 힘을 많이 쓰는 직업인지라 한달에 한두번은 간부들끼리 보신탕집을 찾거나 솜씨 좋은 '사모'를 아내로 둔 간부들이 가까운 선후배들을 불러 보신탕을 대접하는 것이 미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대대 정보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우리 기갑여단장께서는 워낙 깨어 있는 분으로, 보신탕을 백안시 하는 애견인이었다. 폭넓게는 동물애호가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런 만큼 야전을 오가다가 길잃은 개나 고양이를 목도하실 적에는 퍽 어여삐 여기시어 죄다 공관으로 들이시었다. 워낙 그런 일이 잦다 보니 공관을 관리하는 여단 본부대장도 여단장 가족의 반려동물로 승격한 개나 고양이 건사에 늘 분주했다.
2000년대의 목전, 지금 이맘 때쯤이었던 어느 봄날 새벽. 여단 공관 소속 반려견 한 마리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필 여단장 가족이 참으로 애정해 마지않는 해피(흰색·스피츠와 말티즈의 믹스견·생후 1년 6개월 추정)가 사라진 것이다. 기동사격장 근처 논바닥을 방황하던 해피를 여단장이 데려온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여단 본관 지하에 마련된 TOC(지휘통제실)로 여단 간부들이 죄다 소환됐다. 예하 대대 역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30분만에 일일 여단 상황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예하 4개 대대와 2개 중대로 해피의 몽타주가 배포되고 부사관들 중심으로 구성된 TF팀이 수색에 들어갔다. 우리 대대에서도 일명 '개아범'으로 유명한 개장수집 아들 신 상사가 총기 없는 알철모 단독군장으로 대대 선임하사들 5명을 이끌고 해피 수색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는 동안 여단 의무대장은 본부대의 협조를 받아 공관을 비롯해 부대 내 거주 중인 의무대 본부 앞 연병장에 집결시키고 보호에 들어갔다. 개 7마리, 고양이 4마리 등 총 11마리였다.
수색작업은 난항이었다. 날은 맑았으나 산 중에 틀어박힌 부대의 지형적 특성상 품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견공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부대 주변을 울타리가 삼엄하게 감싸고 있었으나 사람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뿐 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수색범위는 부대를 'ㄷ'자로 감싸고 있는 404고지와 인근 무명고지들까지 확대됐다. 인근 민가에는 예하 대대 인사과장들이 급파됐다.
사건발생 당일 점심 때가 다 됐지만 수색 작업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목격자 조차 없었다. 오후 일과 시작 시간이 다 돼 필자 소속 대대 대대장이 대대 간부들을 집합시켰다.
"민가를 탐문 해본 결과 개장수가 어제 이 지역을 방문했다고 한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좁은 철창 안에 다른 개들과 갇혀 겁을 잔뜩 집어먹은 해피가 눈에 어른 거렸다. 아니 그것 보다는 여단장이 받을 충격이 걱정이었다. 5분대기조가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일 야간 점호시까지 해피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으슥해지면서 5분대기조와 기동타격대를 투입하는 방안이 심각하게 논의됐지만, 운용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참모들의 조언을 여단장이 받아들였다. 대신 여단장 쪽 TOC 회의용 탁자 테두리에 지휘봉 자국이 깊게 남겨졌다.
 
사설 유기견 보호소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보호견들이 새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유기견. (사진=뉴시스)
 
해피가 돌아온 것은 그 다음날 새벽 5시쯤이었다. 공관 현관 앞에 신문을 가지러 나왔던 '사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 본 개집에서 천연덕스레 자고 있더란다. 그날 부대 점심상에는 소고기 미역국이 올라왔다.
사태는 극적으로 마무리 됐으나 그날 이후 부대에서는 해괴한 풍경이 벌어졌다. 부대 내 거주하는 개와 고양이들도 별도의 점호를 받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 7마리 오른쪽 옆구리에는 파란색 매직으로 '공관'이라는 두 글자와 넘버링이 크게 표시됐다. 처음에는 털 위에 '마킹'을 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 아예 옆구리 털을 네모 모양으로 밀고 맨 살에 '마킹'을 했다. 그러나 털이 자꾸 자라는 바람에 나중에는 '마킹'을 포기했다.
몸 성히 돌아왔지만 해피가 결코 안전한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대대 부사관 중에 '똥개'라는 별명을 가진 중사 한 명이 있었는데, 그가 해피를 보호하고 있었다. '똥개' 중사는 보신탕 매니아였다. '로드킬'로 유명을 달리한 개를 보신탕으로 즐길 정도였다. 부대 내 돌아다니는 개들을 볼 때마다 보름달빵을 건네는 '똥개' 중사의 눈빛이 그래서 예사롭지 않았다.
후일담을 종합해 본 바, 사건 당일 '똥개' 중사는 그 전날 철야당직을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오는 중에 해피를 만났다. 여단급 부대 규모가 상당하니 여단장이 며칠 전 데려온 해피를 '똥개' 중사는 몰랐던 것이다. 보름달빵으로 꾀어 해피를 집으로 데리고 간 '똥개' 중사는 전날 철야당직으로 지쳐 금세 잠들었다. 해피는 그 다음날 요리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퇴근길 '촉'이 이상해 '똥개' 중사 자택을 홀로 급습한 '개아범' 신 상사에게 범행 현장이 발각된 것이다.
신 상사는 1~2시간 '똥개' 중사에게 사랑의 얼차려를 부여한 뒤 부대 앞 '이서방 치킨집'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해피를 안고 가 공관으로 들이밀었다고 한다. '똥개' 중사의 장래를 고려하여 사건의 전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필자가 알게 된 것도 전역을 불과 사흘 앞두고였다.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