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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방역패스' 적용, 개인 '온라인 능력' 따라 다르다는 법원

서울행정법원 13부,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 기각

2022-01-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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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법원이 방역패스 집행에 대해 결론적으로 상반된 판단을 내 놓으면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판단의 경우,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국민에 대해서는 방역패스 집행으로 인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 개인간 판단을 달리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는 지난 14일 원외정당인 혁명21과 당원 황모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방역패스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혁명21의 신청을 각하하고 황씨의 신청은 기각했다. 혁명21의 경우 정당으로서 직접적인 방역패스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 자격도 없다고 봤다.
 
앞서 혁명21과 황씨는 지난 3일부터 1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3000㎡ 이상의 대규모 점포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 방역패스 처분은 무효라며 소송을 내면서 방역패스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게 됐다며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백신패스반대국민소송연합이 서울시를 상대로 방역패스 정책 효력을 멈춰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사건 심문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한 학부모가 고3 및 12~17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중지를 각하한 재판부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황씨 신청에 대한 기각 판단의 이유다.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는 "PCR 음성확인서나 예방접종의 예외사유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구비하지 않으면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한 정부의 방역패스 집행은 국민이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지위에서 누리는 계약 체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널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획득마저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방역패스가 일반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직접 출입 없이 온라인 물품 가능"
 
재판부는 그러나 "황씨는 정당 활동을 하면서 직접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다고 보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규모 점포에 직접 출입하지 않고도 온라인을 통한 물품 구매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이어 "방역패스로 황씨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해 방역패스 처분 효력을 긴급히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방역패스가 대규모 점포의 입장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고 종이증명서를 출입 대체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 소형 점포나 전통시장에는 방역패스가 적용되지 아니하므로, 생필품 구매가 전면적으로 차단되지는 않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법원이 코로나19 방역패스의 효력을 일부 정지한 지난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시행 관련 현수막을 회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한원교)는 같은 날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이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등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신청인들이 방역패스 집행 정지 대상으로 신청한 17곳 가운데 식당과 카페 등은 마스크를 벗는 등 감염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12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에 대한 방역패스는 식당과 카페, 영화관, PC방 등 17가지 시설 모두에서 효력을 중단시켰다.
 
"온라인 능력으로 결정, 누가 받아들이나"
 
행정소송을 많이 다루고 있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 특히 가처분 신청 사건의 경우 신청자의 신청에 대한 개별적 구체적 판단만을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 등 개인의 온라인 처리 능력에 따라 손해 예방의 긴급한 필요성을 달리 봐야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방역패스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 낸 사람 가운데에도 인터넷이나 SNS 등 개인의 온라인 처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이번 기각 결정을 다른 국민들에게도 적용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겠느냐"고 비판했다.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배경에는 코로나19 확산 상황과 가처분 신청 사건의 특수성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로서는 감염 확산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 필수적인데, 가처분 신청 사건은 본안 판단 전 행정처분으로 벌어질 당사자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신속한 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사건을 개별적·구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원칙론도 나온다. 법원으로서는 가처분 정지 신청자의 개별적·구체적 주장과 사정을 따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독일에서는 연방헌재에서 판단"
 
이런 이유로, 공익과 국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판단 등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일원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HB법률사무소)는 "독일의 경우 공익과 국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행정처분의 집행정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연방헌법재판소에서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방역패스 집행 정지 신청 같은 경우, 각 재판부나 심급별로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른 국민 혼란의 가능성이 늘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사법부의 신뢰 확보 차원에서라도 최종심에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고3 학생인 양대림 군 등 시민 450여명이 지난해 11월10일 전국 17개 시·도지사를 상대로 방역패스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이달 7일 양 군을 포함한 시민과 학생 1700여명이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했지만 헌재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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