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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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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패소자부담주의는 정의일까?)①'염전노예 피해자'도 패소비용 무서워 소송 포기

민소법 98ㆍ109조 "패소자가 변호사 비용도 부담"

2021-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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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사회적 약자가 국가와 지자체, 대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공익소송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사소송에서 패소하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도 내야 하는 '패소자 부담주의' 때문이다. <뉴스토마토>는 공익소송 패소자가 금전적 부담을 떠안는 제도의 한계와 해결 방안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편집자주)
 
사라진 줄 알았던 '염전노예'가 최근 다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염전 노동자 박모씨는 지난 2014년부터 전남 신안에서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며 염전주 장모씨를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과 근로기준법 위반, 상습 준사기, 감금 등 혐의로 지난달 고소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염전 노예' 피해자 조차 져야 하는 패소비용 부담
 
박씨가 국가와 신안군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경우 '패소자부담주의'가 적용될 수 있다. 앞서 염전노예 피해자 세 명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내 2019년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지만, 1심 때 원고는 여덟명이었다. 1심에서 한 명만 승소했고, 나머지 일곱명 중 네 명이 항소를 포기했다. 패소자가 상대방 소송비를 부담해야 하는 민사소송법 98조 때문이다. 상대방 소송비에는 변호사비도 포함된다.
 
박씨의 법률대리인이자 이전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대리인이던 최정규 변호사는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피해자 대부분이) 이탈했다"며 "(피해자의) 변호사 비용도 받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는데 상대방 비용까지 부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공익소송을 지원하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패소자 부담주의가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김영연 인권센터 간사는 "소송에 드는 비용 자체는 저희가 부담하더라도, 패소 시 상대방 변호사비 등 까지 부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 점 때문에 (소송을) 안 하거나 주저하는 분이 계신다"고 말했다. 또 "기대와 달리 패소 했을 때 비용을 뒤늦게 마련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이밖에 암에 걸린 핵발전소 인근 주민 이 모씨 등이 한국수력원자력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패소, 지하철 낙상사고 후 제대로된 조치를 못 받아 사지가 마비된 시민의 지자체·공사·의료기관 소송 패소 등이 공익소송을 어렵게 하는 사례로 거론된다.
 
소송 구조 기관인 대한변협 법률구조재단과 대한법률구조공단도 패소 시 상대방 변호사비 등 소송비를 부담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인이 국가와 대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에 따른 소송비 부담이 커 재판 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남소예방 효과 없어 "각자부담해야"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패소자 부담주의를 도입하지는 않았다. 1960년 소송비용부담 원칙을 처음 정한 민사소송법 89조는 소송비를 패소자 부담으로 규정했지만, 여기에 변호사 보수를 포함하지는 않았다. 이후 1990년까지 변호사 보수 각자 부담 방식을 취했다. 현재 일본과 미국이 원칙적으로 따르는 방식이다.
 
변호사 보수는 1990년 1월 법 개정으로 소송비용에 포함됐다. 패소자 부담주의는 이때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신설돼 오늘날의 98조로 이어졌다. 민소법 109조는 변호사 보수를 대법원 규칙이 정하는 범위에서 소송비용으로 인정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시행령' 12조 3항도 패소자 소송비용 부담을 적시한다.
 
민법 개정 당시 무분별한 소송(남소) 예방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소송은 오히려 늘고 있다. 대법원이 낸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민사사건은 482만9616건이다. 2011년 435만1411건에서 2016년 473만5443건, 2019년 475만8651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박호균 히포크라테스 대표변호사는 남소 예방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민의 재판 청구권을 위한 법 개정을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재판 청구권은 법치국가의 초석"이라며 "사회적 약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목소리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어 "각자 부담 방식이 좋은데 악의적으로 소송을 거는 경우가 있고, 상대방이 시간을 끌며 부당하게 방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 사람들에게는 패널티를 줄 필요가 있고 부당행위에 따른 소송 비용을 물리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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