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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상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2021-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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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의 대선주자가 결정되었다. 지금까지는 대선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같은 당의 후보 간에 격렬한 비난전을 펼쳤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른 정당의 후보와 충돌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좋은 것과 나쁜 것, 혹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과 악을 모두 가진 인물보다 악인과 선한 사람으로 등장인물들이 확연히 구분되는 드라마가 인기가 더 많다. 
 
그런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팩트폴니스'에서 "우리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영웅과 악인,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세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양측으로 나누는 것은 간단하고 직관적일 뿐 아니라, 충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극적이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항상 그런 구분을 한다"고 했다. 
 
이분법적 사고는 일단 편하다. 옳고 그름을 확연히 구분하다 보니 깊게 살피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주장도 뚜렷해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어느새 우리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이 과연 맞는지조차 의심하지 않게 된다. 내 편에는 조건 없는 지지를, 상대에 대해서는 혐오와 비난을 드러내게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편에 대한 지지보다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더욱 극성스러워진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그런 정치,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그만큼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정치인은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치인이 국민을 섬기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인을 추종하고 떠받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는 정치인이 '국민의 일꾼'이라고 하지 않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어디 그뿐이랴. 극성지지자라는 이들은 재판받는 전직 장관의 차를 닦아주기도 하고, 검찰청 옆을 조화로 채우기도 한다. 그런 정치인이 잘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분법적 갈라치기'다. 수년간 그런 모습은 정치권에서 일상화되어 왔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혐오와 비난만 가득했다. 선거기간이 아님에도 그랬다. 마치 쭉 선거기간이었던 것처럼 정치권은 상시적인 투쟁 기간에 있었다. 이런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먼저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악마가 아니다. 또한 우리에게 정치인은 보호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한스 로슬링은 "나쁜 사람을 찾아내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이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상대 진영의 후보자 역시 다 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한스 로슬링의 말처럼 이제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보호하고 상대 진영의 정치인을 공격하는 '홍위병'의 역할은 올바른 유권자의 자세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후보로 선발된 후에는 정책 발표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마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곧 정책 발표를 이어나가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지지자라면 이재명·윤석렬·안철수·심상정 후보가 어떤 정책을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는 마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대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그만큼을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정치인을 평가하고 우리의 일꾼을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 한다. 나라의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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