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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

(데스크칼럼)필요없었던 우산과 인형

2021-08-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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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 협력인의 카불 탈출은 법무부·외교부·국방부 등의 기민한 대처와 현지 한국 정부 인력의 멋진 협업에 의해 성사됐다. '미라클 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조치는 한국 외교사에도 크게 기록될 멋진 성과다. 특히 일본이 자국민과 현지인 협력자 등 500여명을 대피시키는 작전에 나섰음에도 현지인을 단 1명도 대피시키지 못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분명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과 차관의 행보가 이른바 잔치집에 재를 뿌린 꼴이 됐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우산 브리핑이 첫번째다. 강 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브리핑을 진행하는 동안 한 직원이 무릎을 꿇은 채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과잉 의전, 황제 의전 비판이 빗발쳤다. 강 차관은 곧바로 사과문을 내고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프간 협력인과 가족들이 입국하던 26일 공항 보안구역에서 취재를 하던 기자단에 법무부가 장관의 '인형 전달식' 취재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박범계 법무장관이 아프간 협력인에게 인형을 전달하는 장면을 취재하지 않으면 공항 취재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는 법무부 직원의 얘기가 알려지면서 역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종의 헤프닝으로 넘길 수 있지만 사실 반드시 타파해야 할 경직된 관료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사실 법무부로서는 장관과 차관에 대해 오래전부터 그리 해 왔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을 했을 뿐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고쳐져야 할 지점이고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한 현직 소방관이 "정치인들의 재난 현장 방문을 최소화해달라"는 글을 게재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긴박한 현장에 정치인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방문하면 의전을 비롯해 사진 촬영 등으로 현장 활동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 '터널'에도 그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우스꽝스럽게 연출된 장면을 보면 소방관의 호소가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정치인이나 고위관료가 움직이면 그에 따른 행정력 낭비를 감수해서라도 의전을 해야 하고, 다양한 채널의 보도로 이른바 '우리 장관님, 우리 의원님'의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관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일들은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 선진국의 경우 서류뭉치가 든 큰 가방을 맨 채 새벽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국회의원, 밤새워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행정 자료를 찾는 장관, 흐트러진 복장과 머리로 현장에 방해가 되지 않게 나타나 조용히 일을 하다 돌아가는 차관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정치와 행정 모두 대국민 서비스의 일환으로 이를 수행하는 선출직 또는 임명직 공무원은 서비스 대상인 국민의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급여로 받는 공복으로서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비를 맞아 옷이 다 젖은 채 브리핑을 해도 된다. 큰 성과로 대국민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리라 해도 장관이 굳이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과의 공은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무거운 책임은 스스로 짊어지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관과 차관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걸까. 우산과 인형은 결과적으로 없었던 것이 더 나았을 법 했다. 
 
권대경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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