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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정희 너머

2021-08-26 06:00

조회수 : 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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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와 스포츠 분야는 개인을 영웅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이목을 끈다. 연예인과 스포츠인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1%도 채 되지 않는 스타만을 승자로 만드는 이런 엔터테인트먼트 마케팅 속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흘린 땀은 물거품이 된다. 한 때 한국사회를 뒤흔들던 각종 연예인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인기가 시들어버린 지금, 그나마 젊은 한국의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쿨한 모습에, 영웅서사로 자신들의 뱃속만 채운 어른들이 부끄러워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하나의 체계가 사회 속에서 작동하기 위해, 영웅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영웅이란 수없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견고하게 세운 체제 위에서 탄생하는 부산물일 뿐이다.
 
2010년 9월, 박근혜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그 시기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일명 과총은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이라는 책의 출판기념회를 열고 박근혜를 비롯한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계 인사들을 초청했다. 이 행사의 판매수익금은 박정희과학기술기념관 건립에 쓰일 예정이었는데, 결국 한국과학기술원 KIST는 2012년 장영실 동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다. 과학기술사를 전공한 김상현은 “민주화 이후 집권한 김영삼,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군사독재와의 단절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았”지만, 박정희가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주조한 “과학입국과 기술자립의 비전을 채택하고 그 실혐을 천명하는 데 있어서는” 박정희의 계승자임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정책에서 박정희의 계승자임을 자처한 건, 문재인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정권은 4차산업혁명 같은 구호를 통해 과학기술에 피상적으로 접근했고, 박정희식 과학기술 패러다임, 즉 정치적 도구로서의 과학기술이라는 구태를 반복했다. 문재인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K-방역이나 국내백신개발 등의 이슈에 대한 집착은, 현 정부 또한 박정희가 추구했던 과학기술과 민족주의의 결합에서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흔히 ‘과학보국’과 ‘기술입국’이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박정희식 ‘과학민족주의’ 패러다임은, 민주화세력이 정치적 투쟁을 통해 극복한 군사독재보다 더욱 견고하게 한국의 과학기술자사회와 정치인, 그리고 대중을 짓누르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은 여전히 박정희의 유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기술분야처럼 극도로 전문적인 학문체계는 없다. 한국사회의 언론과 대중이 정치와 경제 분야에 극도로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분야의 문턱값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는 다르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은 고도로 전문화되는 길을 걸었고, 이젠 심지어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서도 조금만 분야를 넘어서면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은 과학기술자들의 사고방식을 매우 편협하게 만든다. 특히 박정희 시대를 겪은 한국의 과학기술원로들은,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데 매우 익숙하며 그 시대에 대한 향수로 과학기술계를 이끌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박정희 시대는 과학기술인의 전성시대였기 때문이다.
 
승부를 알 수 없는 대선경쟁 속에서, 다시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영웅으로 만들 대통령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웅이자 왕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구걸하며, 스스로 노예가 될 정책집을 선물하고 있을 것이다. 과학사가 박성래는 한국 과학기술인들이 중인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과학기술자 사회가,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려 하기 보다는 정치권력에 기생해 개인적인 잇속만 차리는데 익숙한 집단으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니체는 “어느 시대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의 모든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할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를 대충 문과와 이과로 나눌 수 있다면, 오늘날의 한국에서 노예는 이과요, 주인은 문과다. 대통령 후보 모두가 문과여서가 아니라, 그들 모두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과학기술계는 박정희를 넘어서야 한다. 그 선택으로 노예와 주인의 길이 갈릴 것이다. 이제 제발, 노예가 되지는 말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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