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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율

(인터뷰)"재생종이로 만든 노트북 거치대, 세계서도 주목…포도송이처럼 성장 열매 나눌래요"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 인터뷰

2021-07-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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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플라스틱 병뚜껑, 사탕수수, 커피컵 등 버려지는 것들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매번 다른 랜덤(무작위) 색상입니다.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과 포도송이처럼 함께 성장하며 친환경 디자인 제품을 더 많이 전파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대방동 본사에서 만난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는 친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제품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이 같은 목표를 제시했다. 그레이프랩은 재생용지로 친환경 상품을 만드는 회사다. 최근엔 종이 한 장 무게로 휴대가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노트북 거치대를 만들어 주목받았다.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가 지난 4월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한 기념 상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선율 기자
 
지난 4월 그레이프랩이 내놓은 친환경 거치대(지플로우)와 미니스탠드 제품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45g의 100% 친환경 재생지 한 장으로 어떠한 화학적 접착이나 코팅 없이 독자적 접지기법으로 우수한 디자인을 끌어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 이 제품은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으로 국내뿐 아니라 미국·유럽·중국·일본에서 디자인 특허가 등록돼 있다. 
 
별도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판매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를 통해 올린 친환경 노트북 스탠드는 오픈 1시간만에 판매 1000%를 기록했다. 이달 1일 기준 2027%를 달성했으며 다수 기업들로부터 컨설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레이프랩 친환경 노트북 거치대 지플로우.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이익을 나눠갖는 수익구조로 사회적 가치까지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이선율 기자
 
특히 그레이프랩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제품엔 발달장애인들의 그림이 들어가고 판매수익은 이들과 나눈다. 월급도 평균 최저시급보다 높은 수준으로 지급된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이 그린 그림이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면서 “황금비율이 아니게 그렸는데 전체적으로 어울리는 형태가 나왔다. 틀에 박힌 방식에서 벗어나 저의 손발을 자유롭게 해준 분들 덕분에 매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그레이프랩은 ‘그레이프(포도)’와 ‘랩(실험실)’을 결합한 단어로 포도송이 이론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발달장애인들을 고용한 이유도 영국 유학시절 영향을 받아 논문까지 썼던 포도송이 이론에 기초한다. 홀로 독식해 몸집을 키우는 피라미드식 경제 모델이 아닌 포도송이처럼 옆으로 열매를 맺으며 같이 성장하는 상생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론이다. 
 
김 대표는 “현재는 대기업들이 성장해 작은 기업들을 계속 흡수하는 형태로 가고 있는데 이로 인해 로컬 기반 산업들이 무너졌다"면서 "우리가 주변에서 저렴하게 쓰는 물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해서 나온 생산물로, 제 3세계 국가 근로자들의 고통이 녹아있다. 포도송이 이론처럼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지속가능하고 함께 잘 사는 시스템을 늘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레이프랩 친환경 노트북 거치대 지플로우. 사진/이선율 기자
태양광을 활용한 실내 무드등(왼쪽). 낮에는 햇빛 아래 3시간동안 충전하고 밤에 6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오른쪽은 플라스틱 병뚜껑을 활용해 만든 노트. 사진/이선율 기자.
 
사실 포도송이 이론을 지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11년 카카오 이모티콘을 기획하면서부터다. 카카오(전신 아이위랩) 초창기 멤버였던 그는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이모티콘 유료화’를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도입해 성공시켰다. 당시 그는 강풀·이말년·노란구미·낢 등 웹툰작가들과 이모티콘 제작을 함께하며 큰 성취감을 맛봤다. 김 대표는 “당시 웹툰 생태계가 굉장히 열악했고, 작가들도 수익을 얻기 힘든 구조였는데 이모티콘을 통해 수익이 보장되자 그들도 원하는 창작활동을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됐다며 매우 고마워했다. 그때 보람을 느꼈고, 함께 수익을 나눠갖는 이런 생태계를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다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레이프랩이 만든 친환경 종이 거치대 가격은 2만원대 전후로, 종이로 만든 것치곤 저렴하지 않다. 이는 친환경 재생지의 원자재 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일반 종이 대비 재생지는 평균 5~10배 가량 비싸다. 김 대표는 “원가가 높고, 가격이 비싸지는 데다 마진도 적게 챙기고 있다”면서 “현재는 시장 니즈가 없어서 비싼데, 많이 만들어진다면 재생지 가격도 떨어져 더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고 가격도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환경적 가치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전세계적으로 베인 나무의 40%가 종이로 만들어지는데 재생지를 쓰게 되면 나무들을 베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려면 무엇보다 소비자가 친환경 제품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친환경 종이 거치대 외에도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다이어리, 전기 없이 사용하는 태양광 조명 등도 만들고 있다. 김 대표는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로 변화시키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제품들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려고 많은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김 대표는 재생지, 대체 에너지를 활용한 제품을 많이 만들어 판매 유통 채널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선 네이버스토어를 비롯해 알맹상점, 모래상점 같은 제로웨이스트 숍 등 10여 곳에서 그레이프랩 제품을 판매 중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엣시(Etsy)에도 최근 우리 제품에 대한 반응이 좋고, 잘 팔리고 있다. 뉴욕, 영국, 독일 등에서 수요가 있어 납품하고 있으며 온라인 채널을 중심으로 수익구조를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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