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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대법 "추행 2년 후 고소했어도 피해자 진술 배척하면 안돼"

"부수적 사정 의해 고소했다고 판단…합리적 추론 아니다"

2021-05-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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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성추행 피해자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고, 사건 발생 후 2년이 지난 이후 고소한 경위가 있더라도 피해자 진술을 배척해 무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 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이씨는 같은 대학교 학과 친구들과 콘도에 놀러 간 지난 2016년 12월28일 객실에서 자고 있던 친구 A씨의 몸 일부분을 여러 차례 만진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추행의 범의도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이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40시간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 2년을 명령했다.
 
2심은 이씨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취신하기 어렵고, 그 밖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심신상실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했음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추행 당시 피고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고, 피고인이 뒤에서 피해자의 몸을 만졌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피해자가 다른 친구들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을 보면 피고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가 피고인이 몸을 만져서 다시 돌아누워 서로 마주 보는 상태가 됐다는 것인지 여부가 불명확하다"며 "당심 법정에서는 '피고인에게 등을 대고 누워있다가 피고인이 만지기 시작하니까 그게 싫어서 몸을 뒤척이다가 나중에는 피고인과 멀어지는 쪽으로 몸을 구른 것'이란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는 사건 발생 이후에도 피고인과 단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일명 멀티방(룸카페)에 가서 장시간 함께 있기도 했는바 피고인한테서 추행을 당한 이후 학교 내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했다는 피해자가 위와 같이 피고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별다른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다는 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라고 부연했다.
 
특히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당초 피고인한테서 사과문을 받고 마음이 풀릴 것으로 생각했고, 고소할 생각까지는 없었다는 것"이라며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피고인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까지 거의 2년이 넘는 기간이 경과하는 동안 피해자는 위와 같은 추행 사실과 관련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고소에 이르게 된 경위로도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이유로 들고 있는 사유들은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이나 피고인과의 관계 등에 비춰 피해자의 진술과 반드시 배치된다거나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추행 사실을 인지한 직후 피해자가 취한 행동에 관한 진술은 피고인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는 취지로서 피고인이 자신을 추행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나머지 피고인에게 곧바로 항의하거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상황을 벗어나려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피해자가 몸을 움직여 피고인과 마주 봤는지 여부와 같은 부수적인 사정을 들어 피해자의 주된 진술 취지를 믿기 어렵다고 할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발생 후 피고인과 단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룸카페에서 함께 있었던 것에 대해 사건 당일 일어난 일에 관해 해명을 듣고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고, 위와 같은 행동은 친하게 지냈던 피고인으로부터 잠결에 추행을 당한 피해자로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피해자가 이 사건 발생 후 별다른 어색함이나 두려움 없이 피고인과 시간을 보낸 것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직후 입대해 피해자가 마주칠 일이 없었고, 그 기간 피해자가 가정에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한 사정들을 감안하면 약 2년이 지나서야 고소에 이른 경위를 수긍할 만하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피고인의 사과문에 '같은 과 친구들에게 추행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과 피고인의 어머니로부터 '피해자가 먼저 피고인의 신체를 만진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은 것에 화가 나 추행 자체가 아닌 부수적 사정에 의해 고소한 것으로 판단했는바 이는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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