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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실망스러운 검·경 수사력

2021-04-15 06:00

조회수 : 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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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력에 실망했다.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얘기다. 60일 넘게 나라 안을 발칵 뒤집었지만 밝혀낸 것은 '친모는 친모 아닌 외조모'라는 과학적 사실 하나다. 물론 경찰의 빈틈 없는 확인에서 비롯된 성과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수사가 진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검찰은 '사체유기 미수'죄라는 경찰 의견을 '사체은닉 미수'라고만 바꿨다. 초라하다. 재판에 넘겨진 친모와 둘째딸은 차라리 재판 받는 지금이 훨씬 편안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언론이 치고 나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그알)>팀이 '사망한 보람이'와 '사라진 보람이'의 귀모양을 대조해 아이가 뒤바뀐 시점과 장소를 매우 구체적으로 추정했다. 적어도. 검·경 수사결과 발표 보다는 논리적이고 친절했다. 당장 경찰 수사가 잘못됐고, 검찰은 공소장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비판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바꿔치기' 시점과 장소가 '핀셋 추정'된 결정적 근거는 5000여장의 피해자들 사진이다. 피고인들의 가족, 지인들 협조를 받았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을 '강제수사권'이 있는 검·경은 왜 못했을까.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개다. 외견만으로 식별이 가능한 신체부위로, 지문과 치아가 있고 귀 모양이 있다. 경찰도 과거 이를 활용해 사건을 해결한 예가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유명 여배우의 일명 '노모 jpg'파일이 시중에 돌아 역시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물론 합성이었다. 국내 여배우의 눈코입과 얼굴 라인을 포함한 일본 포르노 여배우의 알몸 사진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 솜씨가 얼마나 교묘했는지 경찰은 암담해 했다. 피의자는 식별되지 않았고, 피해자의 피해는 2차·3차로 확산됐다. 그때 단서가 된 것이 여배우와 사진 속 인물의 서로 다른 귀 모양이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합성 사실을 발표했고 사건은 마무리 됐다.  
 
검·경이 이번 사건에서 현존하는 단서를 놓친 것은 'DNA·혈액형 검사' 결과에 매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이 뒤늦게 '신생아실 보람이' 사진들에 대한 판독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넘겼지만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다. 국과수는 '사라진 보람이' 사진에서 '사망한 보람이'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니 '경찰이 결과를 정해 놓고 수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 가듯' 보도한 상당수 언론도 한 몫 했다. 
 
여담이지만, 석씨가 송치될 즈음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어떻게든 경찰보다 진전된 결과를 내 놓을 거란 전망이 많았다. 이번 사건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국민 관심이 가장 집중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수사력을 과시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경찰이 이미 확인한 석씨의 DNA 검사만 재탕하는 차원에서 끝이 났다.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극히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그래야 범인도 승복하고, 국민도 신뢰한다.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은 쌓여 있다. '사라진 보람이'의 행방과 석씨의 범행 동기, 공범 여부 등이 그것이다. 검·경이 'DNA 도그마'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사라진 보람이'는 영영 돌아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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