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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님

(독버섯 디지털성범죄②)n번방 이후 법 강화됐지만…'보는 것도 범죄' 인식 부족

2021-04-12 06:00

조회수 : 7,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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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지난해 n번방 방지법이 제정되면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처벌 조항이 강화됐지만 유사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촬영물을 꾸준히 소비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소지·시청만으로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범법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처벌이 강화되지 않으면 인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강조한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관리에 관여한공범 '부따' 강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자 시위 참석자들이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20년 5월 29일 'n번방 방지법'이라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19개와 형법 개정안 8개가 통과되면서 단순 소지·시청한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 따라 불법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사람을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됐다.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의 불법촬영물 시청까지 처벌할 수 있으며, 스스로 촬영한 영상도 타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할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불법촬영물 구매·소지·시청이 범죄라는 인식은 약하다. 관련 법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어린 나이, 반성 등을 이유로 감형되면서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불법촬영물 소지 등의 경우 6개월에서 1년을 기본 형량으로 권고하고 있다. 
 
시청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 불법촬영물 공유 사이트 회원들. 사진/사이트 갈무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2, 3의 소라넷에서는 단순 시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최근 C씨의 불법촬영물을 텔레그램에서 판매해 구속된 남성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 사이트 사용자들은 해당 사례는 직접 판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자유롭게 찾아보라 던져준 자료를 팔아먹는 나쁜 녀석들이다", "돈 받고 판 X들이나 쫓지, 우리는 강건너 불구경", "그냥 풀린 거를 판매하려고 아주 중간상이 무섭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자신들은 사이트 활동을 통해 얻은 포인트로 구매한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발언도 있었다. 
 
그 사이 피해자들의 불안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는 사람이 많아 유포·확산이 끝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0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 6983건 중 중 유포·유포협박·유포불안 등 '유포' 관련 건이 3603건으로 전체의 52%를 차지했다. 이 중 '유포불안'이 1050건으로 전체의 15%에 달한다.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문제가 근절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불법촬영물 구매·소지·시청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나 법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처벌 강화를 위해 양형 기준을 세분화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행법은 불법촬영물의 내용에 대한 부분이 분명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대부분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핸드폰으로 자기 뒷모습을 찍은 것도 불법촬영물인데'라는 생각이 있으니 반인률적 불법촬영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나온다"며 "그 안에서 폭력적 수위가 높고 가학적인 불법촬영물을 다운로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양형 기준을 따로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지원센터 대표는 불법촬영물 소지·시청의 경우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서 대표는 "법이 개정되고 나서 (소지·시청이) 성폭력 범죄라고 이야기할 강력한 설득의 도구는 생겼다"며 "이제 이것이 제대로 처벌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 경각심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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