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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선거에 고개돌린 2030 "부자로 산 이들이 알까요"

박영선, 오세훈 젊은층 표심 집중 공략… 정작 청년들 '무덤덤'부터 '정치혐오'까지

2021-03-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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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정말 뽑을 후보가 없어요".
"성폭력 언급않는 민주당은 여성을 유권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국민의힘은 정치적으로만 이용해요".
"서민들 내 집 마련 더 어려워졌어요".
"무상급식 모멸감, 부자로만 산 오세훈 후보는 알까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30일 유세 현장에서 만난 20·30 청년들의 목소리다. 
 
곳곳에 벚꽃이 활짝 핀 서울 왕십리역 앞 문화공원. 이날 박 후보는 250여명 가량 모인 청중 앞에 우뚝 서 마이크를 잡았다. 박 후보는 최근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2030세대의 표심을 되돌리기 위해 신촌, 홍대를 찾았다. 이번엔 왕십리다. 왕십리역에 위치한 대학교 인근을 돌며 젊은 층을 대상으로 집중 유세를 펼치기 위함이다. 
 
박 후보의 열띤 구애에도 청년들의 반응은 꽤 무덤덤했다. 잠깐 신기함이 스쳤다가도 덤덤한 표정으로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유세현장에는 2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지만 그 중 2030세대는 20여명 남짓이었다. 유세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들에게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IT 기업을 다니는 이지혜(31·여) 씨는 박 후보 연설 장면을 촬영한 뒤, 곧장 발길을 돌렸다. 이 씨는 곧장 발길을 돌린 이유에 대해 "관심사가 반영된 정책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평소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이 씨는 서울시장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환경 관련 정책부터 찾았다고 했다. 이 씨는 "두 후보 중 어떤 후보도 환경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지 않았어요"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현 세대 뿐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이 환경 문제를 신경써야 한다고 이 씨는 강조했다. 이 씨는 "투표장에 나갈 지, 말 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요. 뽑을 후보가 정말 없네요"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씨는 무표정으로 박 후보를 한 번 더 살펴보고 유세장을 떠났다. 
 
30일 오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왕십리역 앞에서 유세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을 진보적 유권자로 소개한 강 모(28) 씨는 최근 정치혐오에 빠졌다고 전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이후 민주당의 행태에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박 전 시장의 성폭력으로 막대한 세금을 들여 치르는 선거잖아요. 그런데 성폭력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려는 민주당을 보고 여성을 유권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대안이 되지는 않았다. 강 씨는 "국민의힘이라고 다른가요. 성폭력을 그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정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라고 힘줘 말했다. 말하는 중간 중간 강 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강 씨는 어릴 적, 무상급식 반대를 외치는 '어른' 오 후보를 보면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오 후보가 서울시장 시절, 강 씨는 학생이었다. 당시 강 씨는 급식비를 못 내, 반 게시판에 이름이 공개적으로 적힌 적이 있었다. 강 씨는 "그 때 제 이름 석자를 보면서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는지 오 후보는 알까요"라며 "부자로만 산 분이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30일 오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왕십리역 앞에서 유세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집값 폭등,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 부동산 문제에 분노한 목소리도 나왔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이 모(33)씨는 폭등하고 있는 집 값을 보면서 황당을 넘어 좌절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결혼 준비 중인 이 씨는 2~3년 전부터 '생애 첫 주택대출'을 받아 강서구에 위치한 집을 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4억 하던 집 값은 점차 오르더니 8억에 이르렀다. 이 씨는 "돈 많은 사람들은 요즘 같이 예금 금리는 낮고 대출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우선 예금을 깨고 그 자산으로 부동산 투자하더라고요. 하지만 저 같이 돈 없는 서민들은 대출로 집을 사야 하는데, 그마저 정부에서 대출을 막았더라고요"라고 한숨 쉬었다. 이 씨는 자신의 삶을 어렵게 만든 게 바로 '정치'라면서 "민주당은 절대 찍을 수 없어요"라고 했다. 
 
그렇다고 오 후보에게로 표심이 향하진 않는다고 했다. 오 후보의 '재개발·재건축' 정책은 다시 집 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이 씨는 털어놓았다. 이 씨는 "오 후보라고 다른가요. 재개발·재건축은 집 값 상승을 부추길텐데, 그러면 또 정책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인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30일 서울 영등포역 광장 유세에 도착하며 지지자들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공동사진단
 
박 후보 지지자도 만날 수 있었다. 연설 중인 박 후보의 사진을 연신 찍던 대학생 심 모(30) 씨는 홀로 유세현장을 방문했다고 했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심 씨는 박 후보의 왕십리 유세 소식에 카메라까지 챙겨 유세현장을 찾았다. 심 씨는 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서울시를 더 살기 좋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심 씨는 박 후보가 연설 도중에 첫 유세지인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경험을 언급하자, 박 후보가 선 무대를 가르키며 "얼마나 청년들을 챙깁니까"라고 되물었다. 최근 불거진 LH사태 등에 대해서도 "만약에 국민의힘이었다면 숨기기 급급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민주당이니까 그나마 낱낱이 밝히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심 씨는 다시 카메라를 들어 박 후보를 카메라에 담았다. 박 후보가 유세현장을 떠나기까지 심 씨도 자리를 지켰다. 50~60대가 대부분인 유세현장 속 몇 없는 '지지자 청년'의 모습이었다. 
 
 
30일 오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왕십리역 앞에서 유세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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