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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개성공단)①"인생의 황금기 바쳤던 개성공단, 이제 끝났다…청산해달라"

2021-0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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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개성공단은 12년간 청춘을 바쳐 열정을 쏟아부은 곳입니다. 인생의 황금기에 개성공단에 들어가서 모든 걸 바치고 나왔어요. 정부 약속을 믿고 들어갔는데, 5년이 지나도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올해까지만 하고 사업을 접느냐, 이어가야 하나 기로에 서 있습니다."
 
30년 넘게 의류업에 종사한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를 최근 서울시 성동구에서 만났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뒤 그는 폐업의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한달 뒤 정부로부터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전까지는 건실하고 채무도 없고, 사회에 한번도 누를 끼치지 않았던 기업인이었다"고 말했다. 한때는 개성공단에서 300여명의 직원을 두었던 사장님이었다. 지금은 5분의1로 줄었다. 매출은 창피해 말할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견뎌내는 것,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대책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등으로 구성된 현장기업지원반이 '기업맞춤형으로 애로사항을 해소해나가겠다'고 했다. 유관기관들도 저마다 개성공단 기업들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도움은 전혀 없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증명만 쌓여갔다. 빈수레가 요란하기만 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큰 기업들은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녹색섬유의 어려운 사정 같은 것은 봐주지 않았다. 이미 넘겨받은 원부자재, 반제품, 완제품 등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왔다. 그는 "서로 절충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기업들은 원부자재 가격들의 구입가에서 하나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상한 금액은 수억원에 달한다.
 
개성공단이 재개될 때까지만 먹고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도 해봤다. 대표나 책임자는 '도와주겠다' 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비즈니스 세계는 냉정하고도 잔인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해 납품했던 것을 국내에서 두배의 비용을 들여서 만들어 납품한 일도 있었다.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손해는 쌓여갔다. 박 대표뿐 아니라 개성공단 기업들 다수가 이러한 상황을 이기지 못해 폐업하거나 휴업했다. 
 
녹색섬유의 박용만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2016년께 중소기업진흥공단(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수출입은행 등의 국책은행은 개성공단 기업들을 대상으로 특별대출 프로그램을 내놨다. 연대보증도 따랐다. 매년 1월마다 대출받은 금액을 상환하라는 공문이 온다. 입주 기업들 중에서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 
 
박 대표는 "내 잘못으로 공장 문을 닫았다면 상관없지만, 정부 정책에 의해 닫은 공장에 대한 대출은 유예해주거나 별도의 지원이 있어야하는 것 아니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 내 이름으로, 내 회사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수가 없다. 버리지도 못하고 중단하지도 못한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지난 4년간 공단재개와 함께 제대로 된 피해보상과 생계지원을 바랐다. 이제 힘이 떨어졌다. 재개가 어렵다면 청산이 절실하다. 청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빚'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그는 "공장이 남한에 있었으면 내가 스스로 정리하겠죠. 개성공단은 그게 아니라서 정리하고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4년과 달리 그는 이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시작하고 벌였으니 스스로 종지부를 찍어 달라고 목놓아 외친다. 박 대표는 "공단이 중단되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빚, 그리고 피폐하고 늙어버린 몸과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재개가 어렵다면, 개성공단 1기 기업들의 명예로운 퇴장을 보장해야달라"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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