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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차기태의 경제편편)LG는 고비마다 현명했다

2021-01-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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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결단을 내렸다. LG전자의 대표이사 CEO 권봉석 사장은 20일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휴대전화 사업을 끝내겠다는 선언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충격적이다. 지난 11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1'에서 롤러블폰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인 직후이기 때문이다. 둘둘 말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롤러블폰 자체는 실용성에 의문을 야기했었다. '개발을 위한 개발'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제품 자체는 놀라웠고, LG전자의 기술력과 집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마지막 찬란한 불꽃이었다.  돌연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으니, 너무나 극적인 반전이다.
 
그러나 사실 큰 충격은 아니다. 이미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이 만성적자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수준에 그친다. 존재 자체가 희미한 것이다. 2015년 2분기부터 23분기 내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까지 누적 영업적자는 무려 5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점유율이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LG전자라는 가전 대기업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고전한 것은 무엇보다 출발 자체가 늦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폰 개발 초창기 애플에 이어 삼성 등이 스마트폰 개발에 앞서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LG전자는 꿀먹은 벙어리인 양 지켜봐야 했다. 뒤늦게 뛰어들기는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LG전자는 선두주자들을 따라잡으려고 온갖 시도를 다했지만, 결과는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품주기가 짧은 데다 선두주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고객의 관심을 붙들어매왔기 때문이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에 밀려났다. 이런 악조건 속에 살아남기 위한 마케팅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래저래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고 해서 완전실패는 아니다. 가전 등 다른 분야에서는 넘보기 어려운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가전사업의 경우 지금까지 세계 1위를 지켜왔던 미국의 월풀을 제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스마트폰을 정리하고 가전사업에 대한 투자에 더욱 힘쓴다면 그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의 기회이다.
 
시야를 LG그룹 전체로 넓혀 봐도 마찬가지이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사업이나 LG화학으로부터 분사한 자동차 배터리 사업 등은 스마트폰 철수에 따른 상실감을 메우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축적된 전자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 새로이 에너지를 쏟을 일은 아직도 많다.
 
LG그룹은 지금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현명한 결단을 내리곤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 빅딜의 형식을 통해 반도체 사업을 내놓았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당시에는 업계 1위를 달리던 LG카드를 정리하고 금융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LG가 이들 사업을 정리한 것은 자의반타의반이었다. 정부와 금융계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결단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LG가 있게 됐다. 그룹의 자원을 잠식하는 부실계열사를 정리함으로써 보다 건실한 재무구조와 사업구조를 이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LG가 이들 사업 대신에 열심히 키운 전기자동차 배터리나 화장품, 이동통신 등이 그런 결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LG전자의 이번 결단에 대한 반응도 좋다. 증시에서는 LG전자의 결단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시가총액 30조원 고지를 밟고 유가증권시장 시총 10위권에 진입할 가능성도 커졌다. 증권사들도 LG전자의 목표주가를 20만원대로 앞다퉈 올렸다. LG의 기업가치를 잠식하던 요인이 이번에 제거되니 환호하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 롤러블 스마트폰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았던 연구원들을 비롯해 해당 사업부의 임직원들은 큰 상실감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고용도 걱정이다. 이런 문제는 LG가 명예롭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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