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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2020-11-17 17:59

조회수 :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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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참 그럴듯하게 들렸다. 신혼 집 마련에 한참 골머리를 앓던 친구는 결국 서울 외곽 지역에 전셋집을 구했다. 안으로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집은 더럽고 비싸고 좁아진다고 했다. 그나마 부모님 잘 둔 덕에 대출 안 끼고 집구한 게 어디냐며, 당장 출산 계획은 없으니 앞으로 월급 부지런히 모아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란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부모 덕 보는 게 효도라는 친구의 말도 꽤 설득력이 있었다. 나이 들어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혼기만 가득 차 시집도 못 가고 불효할 바엔 차라리 이자 없는 ‘엄마론’ ‘아빠캐쉬’에 기대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는 거다. 있는 집 철 없는 자식은 오늘도 그렇게 부모님 '등골브레이커'로 헬조선에서의 삶을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국세청은 17일 아파트 분양권을 취득하면서 진 빚을 부모가 대신 갚아주거나 부모한테 빌린 채무를 면제 받았음에도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은 탈세혐의자 85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부모찬스'를 통해 재산을 증여 받으면서 합당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조사강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해당 소식은 오후 내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떠있었다. 사람들이 부모찬스 소식에 얼마나 기가막혀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혼부부가 빚 한 푼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는 게 부러움을 사는 시대에 내 집 마련은 그저 ‘달콤한 꿈’과 같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파른 부동산 상승세에 다가 '정상적인 삶이 무너졌다'는 사람, 전세난에 '결혼까지 포기했다'는 사람 등 살인적인 주택난을 호소하는 청원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한국인들의 땅에 대한 사랑은 말로 해 입 아픈 얘기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땅은 삶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 됐다. 부동산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돈이 생긴 사람들은 집테크에 사활을 건다. 강력한 대출 규제에 빚내서 집사는 호시절은 갔다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주택 구매를 위한 '영끌' 대출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땅은 계급을 정하는 척도다. 땅을 얼마나 소유했는가가 결국 그 사람의 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땅에 의한 계급 구조는 점점 더 고착화되고 있다. 내 집 하나 마련하려고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무얼 하나?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가족 전체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1.4년이 걸린다고 한다. 결국 땅은 부의 대물림, 빈곤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사회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시키는 뿌리가 바로 땅이었다. 국민 다수의 꿈과 목표가 내 집 마련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인가. 요즘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비자발적 비혼이 점점 늘고 있다. 대부분 내 한 몸도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에 누군가를 책임져야한다는 일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라 여기는 것 같다. 한 지인은 "조부가 친일파거나 큰 부자가 아닌 이상 결혼이 불가능한 시대"라며 비꼬았다. 요즘 같은 시국에 결혼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준비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암울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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