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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박성연과 반 헤일런

2020-10-21 17:56

조회수 : 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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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일상조차 힘겨운데 올해 하반기 음악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들이 있었다.
 
먼저, 한국의 '빌리 홀리데이' 박성연 선생님이 올해 8월 23일 오전 신부전증 악화로 별세한 일이다.
 
국내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인 고인은 국내 최초 토종 재즈 라이브 클럽 '야누스'를 설립해 평생 운영해온 한국 재즈계의 '산 역사'다.
 
 
고등학교 졸업 뒤 미 8군 무대 가수를 뽑는 오디션에 합격하며 무대에 섰다. 1978년 신촌에 재즈클럽 야누스를 열어 재즈 불모지인 한국에 연주자들이 설 무대를 만들었다. 이후 야누스는 대학로, 이화여대 후문, 청담동을 거쳐 지금 서초동 자리에서 국내 재즈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서울 숲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설 때, 인터뷰 하지 못한 것을 지금에 와서 후회한다. 관계자들 말에 의하면 당시 병실에서도 선생님은 끝까지,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귀를 귀울이며 해맑은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고. 
 
야누스는 고인에게 전부였다. 2012년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상 소장해온 음반 전부를 경매로 처분할 정도로..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재즈계 후배 뮤지션들의 헌정 공연은 아직도 대중음악계에서 회자되는 일화다. 현재 후배 재즈 보컬 말로가 클럽을 이어받아 꾸려가고 있다. 고인은 2018년 11월 야누스 40주년을 맞아 휠체어를 타고 특별 공연을 갖기도 했다.
 
대중들의 기호에 맞춘 공연을 만들지 않는 음악적 타협 역시,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오르내린다. 그의 신념과 업적은 향후 한국 재즈계의 발전에도 커다란 자취로 남을 것이다.
 
 
올해 10월에는 네덜란드 네이메헌 출신의 에드워드 반 헤일런이 별세해 음악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가 남긴 거대한 음악적 흔적을 기사 보도 이후 알게 됐다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접했다.
 
헤일런은 '투핸드 태핑' 주법으로 80년대 헤비메탈 대중화에 앞장 선 기타리스트다. 그의 어린 시절을 찾아보던 중 체계적인 클래식 교육을 고수하던 부모님과의 대립 속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가슴에 반항을 움켜쥔 그는 결국 기타로 역사를 바꾼 인물이 됐다.
 
헤일런의 기타 연주는 록 기타계의 판도를 바꿀 만큼 창조적이라 평가받는다. '투 핸드 태핑'이란 오른손가락과 왼손가락을 동시에 이용해 기타 자판을 피아노 치듯 연주하는 주법이다. 당시에는 자신이 개발한 이 주법을 다른 뮤지션에게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대 위에서 뒤 돌아 서서 연주했다고 한다. 오늘날엔 모든 록 뮤지션들이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됐지만 말이다.
 
헤일런이 마이클 잭슨의 메가 히트곡 'Beat It' 기타 솔로를 연주한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당시 월드투어를 도느라 바빴던 헤일런에게 잭슨은 급히 솔로를 부탁했고, 헤일런은 수화기 너머로 기타 연주를 들려줬는데, 이 날 것의 사운드가 그대로 'Beat it' 녹음본에 실렸다고 한다. 1984년 1월 초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는 두 뮤지션이 역사적인 'Beat it' 합동 무대를 가졌던 영상도 2010년대 뒤늦게 공개되기도 했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음악계에 획을 그은 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 그들의 음악 자취를 기록하고 되새기는 내 임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퇴근길, 두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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