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뉴스통 뉴스 카페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기 사회과학은 점쟁이를 대신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이라고 믿었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나를 포함하여, 사회과학자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코로나 19가 발발하였을 때 과문한 탓인지,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고 예측한 사회과학자의 예언을 듣지 못했다. 이 점은 자연과학 쪽도 비슷하다. 이 문제에 가장 정통하고 권위가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고위 관리는 중국의 입장을 두둔하느라 바빠서 범세계적 재앙 예측에 소홀하였다. 중국발 바이러스 앞에서 긴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전시를 방불케 하는 국민행동수칙이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전대미문의 캠페인들을 지키기 위하여 외출, 악수, 만남을 모두 자제해야 된다. 바이러스의 무차별 행진 앞에 가족·친구도 소용이 없다. 세대차이도 아니요 지역격차도 아닌 위상(位相) 격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나 홀로 침잠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낀다. 항간에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개그도 나돈다. 혼자 밥을 먹으면 처량하다는 느낌까지 가졌던 구세대들은 뉴욕 등 서구에서 수십년 전부터 볼 수 있었던 혼술 혼밥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이제 그 혼술 혼밥에 아예 재택근무까지 단행해야 하는 사태를 만나 기성세대들은 거의 공황상태에 당면하였다. 현대문명이 개인들의 원자화를 촉진시키더니 바이러스가 이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컴퓨터화된 스마트 폰 덕분에 우리는 바로 옆에 친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는 동상이몽의 이상한 생활들을 꾸리고 있었는데 이제 말이 씨가 되어 택배에 의존하는 세태가 성큼 다가왔다. 교육에서도 변혁이 일어난다. 지난주에 글로벌환경경영전공에서 내 강의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조교의 도움을 받아 난생 처음으로 텅 빈 강의실에서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였다. 그냥 인터넷 강의나 유튜브 동영상이 아니다. 학교 측의 배려로 학생들과 실시간 쌍방향으로 화면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손 들고 말로 질문할 수도 있고 자막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학생들 상호간에도 수강생 전원과 대화도 가능하다. 출석을 체크할 일도 없다. 프로그램에 접속하면 곧 출석으로 기록된다. 졸면 다 보이니 조는 학생들도 없었다. 관념상 "좀 갑갑하다"는 느낌은 떨치기 어려우나, 오히려 마스크를 쓰고 만나지 않아도 되니 장점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날이 더워지면 바이러스가 물러나겠지 하고 기대를 걸었는데 코로나19는 여름철인 남미로도 가고 아프리카까지 침공한다. "앞으로 2주가 고비"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작금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들은 이제 아예 내놓고 "사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예고한다. 비로소 제대로 된 점쟁이가 등장한 것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수준을 자랑하는 실력과 설비를 갖춘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니, 믿지 않을 수 없으나, 속으로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복채를 준 바 없으니 이런 예측(점)이 틀리면 좋겠다.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학생들은 모두 비대면 강의로 대체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집단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계 올림픽이나 나라살림과 같은 거시경제 쪽은 당국자들과 사계의 전문가들에 맡긴다지만,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장인들, 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 요양원에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장년들, 서비스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린 아이들은 밖에서 친구들과 놀지 못해 안달이다. 지도자들은 국민행동수칙만 발표해서 될 일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곤경에 대안을 낼 수 있는 지도자들의 출현이 아쉽다. 바이러스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人災)이다. 지도자가 아니라도 모두 합심하여 묘책을 찾아야 한다. 바이러스 침공이 몇 번째의 판도라 상자인지, 또 몇 번째 변화의 물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가 확실히 구시대의 문화에 젖어 살고 있다. 비대면 강의에 만족하고, 유튜브로 공연실황을 무료로 중계하는데 그칠 일이 아니다. 인위적인 문화변동을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만이 아니라, 산업구조를 바꾸는 데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무형의 자본도 늘려야 한다. 우리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꼴찌 수준의 사회자본 수준 덕분에 서로 믿지 못하고 협력하기도 힘들며, 잠시만 느슨하면 불법을 밥 먹듯이 저지르고 인터넷에서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데, 이제 집단 행동전이를 통하여 개과천선하면, 재택근무도 늘고 비대면 컨설팅이나 화상회의도 늘어날 것이다. 경기가 대폭 후퇴하였을 때 화석연료 보조금을 줄이자는 제안처럼, 외식산업이 위축되었을 때, 넘어졌을 때 쉬어가듯이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방안도 모색하면 좋겠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익명 뒤에 숨은 몹쓸 짓' 이제 그만익명성. 어떤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특성이다. 자신이 어떤 말을 내뱉어도 상대방이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는 인터넷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하다. 자신을 감출 수 있다보니 특정인에 대한 의견을 나타내기가 오프라인보다 수월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상대방을 마주하고 말을 하다보니 더 조심스럽다. 내뱉은 말은 그 즉시 자신의 책임이 된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특정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이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사회의 부조리나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고발해 이를 바로잡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온라인 사회는 안타깝게도 익명성으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다. 오프라인이라면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험한 말들을 온라인에서는 쉽게 내뱉는다. 자신을 숨길 수 있어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급기야 네이버와 카카오(다음)는 자사 포털 사이트의 연예뉴스에서 아예 댓글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포털의 뉴스에 달리는 댓글은 뉴스 못지 않게 누리꾼들이 즐겨보는 콘텐츠 중 하나다. 포털들은 부정적인 효과로 인한 지적을 계속 받으면서도 이를 포기하기 어려웠다. 트래픽 유입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트래픽은 포털들의 광고 매출을 늘릴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악플로 인한 폐해가 너무 커지자 결국 이를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네이버와 다음에서 댓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 각종 커뮤니티나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바일 메신저 등에서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과 디지털 성폭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개인간의 메신저 대화나 비밀 단체방은 단속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다. 개인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심의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네이버·카카오 등의 기업들도 들여다 볼 수 없다. 온라인에서의 범죄 행위에 대해 처벌을 아무리 강화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셈이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개인의 성숙한 의식이다.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인물들도 결국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사람이며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 환경에 노출되는 어린이들에 대한 미디어 윤리 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정부가 대화방 참여자 전원 공개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 이후 각종 커뮤니티에 텔레그램 기록 삭제 방법에 대해 문의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익명성 뒤에 숨어 성착취 영상을 즐겼던 이들이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까 두려워 증거를 없애려는 시도다. 네이버가 최근 자신이 쓴 댓글 이력과 닉네임을 공개하기 시작하자 자진 삭제하는 댓글이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IT 강국과 인터넷 강국임을 자부한 한국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온라인에서 익명의 다수로부터 공격받는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자신의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치를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윤리 의식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박현준 중기IT부 기자(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