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에 전향적인 조치를 내놓았지만, 북한이 '남북결별' 선언을 넘어 '군사행동'까지 예고하는 것은 단순히 '대북 전단'이 아니라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남측의 변화를 촉구하는 '극한처방'이자 대미도발 '간보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12일 밤부터 13일 밤까지 이례적으로 3차례나 담화를 내는 등 남측을 압박했다. 장금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은 12일 첫 개인 명의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 났다"고 선언했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13일 북미대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남측에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외교부가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정부는 북미대화의 조속한 재개와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반응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13일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군사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대적 행동'은 그간 공언해온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등이 유력하다. 군사도발의 경우 오는 25일 탈북민 단체가 전단 살포를 강행하면 풍선에 조준 사격을 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러한 북한의 고강도 압박에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급해졌다. 김 1부부장의 담화문이 나오고 3시간여 후인 14일 자정을 조금 넘어 청와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주목되는 것은 국방부의 움직임이다. 국방부는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북한군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면서 "우리 군은 모든 상황에 대비해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별도의 입장을 발표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내부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비태세 점검 및 향후 대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남 군사행동을 사실상 예고한 북한이 미국에게는 다소 수위조절을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리선권 외무성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2주년을 맞은 12일, "우리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며 "다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 선전감이라는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리 외무성의 담화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압박 메시다. 북한이 자신들의 스케줄에 따라 저강도 대남 무력도발을 하고, 미국의 반응을 지켜본 후 핵·미사일 실험 등 추가 도발을 고민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에 미 국무부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북한의 최근 행보와 성명들에 실망했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도발을 피하고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고 원론적으로 밝혔다.
다만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 참석해 "미군의 책무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적들로부터 미국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신 미국의 필수적인 이익을 지키는 데에 분명한 초점을 두고 있다"며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동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를 재확인한 차원으로 보이지만, 최근 북한의 행보와 시기가 겹치면서 북미관계나 자신의 대선가도에 큰 문제가 없다면 남북관계 파열음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뜻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결국 미국과 북한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별도로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한미동맹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주도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하는 것 아니냐는 조언들이 나온다. 북한이 대남 극한압박에 나선 것도 '한미 워킹그룹'등에 발목잡힌 우리 정부의 기조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극약처방'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제는 무너져도 살릴 수 있지만 남북관계는 한번 무너지면 다 죽는다"면서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돌아가야 한다. 깨면 다 죽는다"며 문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파견 등을 촉구했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도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한미동맹과 남남갈등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며 "남북관계 진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소간 한미관계의 불편함이나 남남갈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극복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해 "먼 나라의 분쟁 해결이 미군의 책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