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해외 건설 수주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실적이 좋던 연초와 비교하면 지난달 수주 금액은 절반 넘게 급락했다. 코로나19로 발주 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미중 갈등도 심해지면서 악재가 겹쳤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져 수주 상황은 여의치 않은데 환율전쟁의 조짐도 보인다. 패권 경쟁에 끼인 국내 건설사는 달러 약세에 따른 손해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해외 건설 수주 금액은 18억25000만달러(약 2조1900억원)다. 해외 수주 낭보가 연달아 울렸던 연초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1월 56억4600만달러(약 6조8000억원)보다 67% 급감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으로 심각해진 지난 3월 이후 해외 건설 수주는 침체에 빠져 있다. 3월 해외 수주가 전월 대비 50% 하락한 18억2900만달러(약 2조2000억원)를 기록한 이후 3개월 동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해외 주요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영향이 크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사업 진행을 미루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페낭국제공항 확장사업 시공사를 1분기 중 선정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관광업과 수출이 타격을 받아 프로젝트를 연기했다. 인도네시아의 국영전력회사는 재원 마련이 되지 않은 사업을 연기했는데 코로나19에 따른 전력 수요 감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두바이와 바레인 등도 건설 프로젝트의 일정 조정을 언급했다.
프로젝트 연기뿐만 아니라 신규 건설 투자가 감소할 가능성도 커졌다. 우리 건설사의 텃밭인 중동에서 재정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장기 경제 침체에 대비해 260억달러 규모의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비전2030’에 따른 개발 계획도 80억달러 줄인다고 발표했다. 비전2030은 사우디가 국가 산업구조 재편 및 수익원 다각화를 위해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이외에 오만과 카타르, 이라크 등도 예산 절약에 동참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발주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이런 가운데 미중 갈등까지 번지고 있다. 홍콩보안법, G7 등에서 미국과 중국이 저강도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두 국가의 긴장이 팽팽해져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해외 건설 시장의 발주 환경은 지금보다도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가 나빠지면 유가에 민감한 중동 수주가 특히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갈등이 환율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최근 위안화 가치를 낮추고 있다. 이는 중국의 대미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트럼프 대통령 구상에 역행하는 것이다. 미국이 달러 약세로 맞대응하면 환율전쟁에 불이 붙을 수 있다.
이 경우 우리 건설사의 해외 건설 환경은 더 악화한다. 달러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낮아지면 해외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의 가격 경쟁력이 저하돼 수주에 부정적이다. 환차손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해외에 진출한 건설사들은 공사 대금인 기성금을 달러로 받아 원화로 환전하는데 환율이 낮으면 원화로 환산되는 금액이 낮아진다. 이는 회사의 당기순이익을 떨어트릴 수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성금을 원화와 달러, 현지화 등으로 나눠 받고 있지만 환율전쟁이 터지면 환차손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