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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비전2045, 일본을 넘어선 한국의 글로벌 포용문명
입력 : 2019-07-26 오전 6: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2045년이면 1945년 광복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어떤 상상이 가장 호쾌할까?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100년 만에 일본을 넘어서는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아직까지 세계사에서 식민지를 겪은 나라 중 상대 제국주의 국가를 앞선 나라는 없었다.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다면, 이것은 19세기 제국주의로 시작된 어두운 역사에서 새로운 세계사의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면모와 내용으로 일본을 넘어설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일본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제적 동물'이 되어 국민소득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나라가 되기는 원하는가? 제국주의가 시작됐던 방식의 힘의 논리로 부국강병의 강성대국을 원하는가? 일본의 속 좁은 경제대국 혹은 군국주의의 아베노믹스를 훨씬 뛰어넘는 보편가치를 바탕으로 한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그리고 서구 사람들이 동아시아에서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보편적 가치를 지닌 평화국가가 되면 어떨까? 인권과 민주, 평화, 생태의 보편가치를 가지면서도 개인 소득과 함께 '더 나은 삶(better life)'이 향유되는 새로운 비전을 가진 나라로 일본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의 나라가 되면 어떨까?
 
대한민국은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어떤 나라가 되어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을까? 21세기 들어 가장 첨예한 갈등은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문명 충돌은 세계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 사이에서 익숙한 방식의 갈등이다. 인류사에서 패권국가의 각축은 언제나 있었다. 그레이엄 엘리슨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패권을 둘러싸고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통적 패권국가와 신생 패권지향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26번째 문명 충돌 중 하나로 보았다. 두 나라의 대결이 종국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국제정치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갈등이 첨예화되더라도 한국과 같은 문명 충돌의 단층선에서 국지전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마저도 한국의 국가적 역량에 의해 결정적인 전쟁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예기치 않은 분쟁과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패권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21세기적인 양상이다. 21세기의 문명 충돌과 전쟁 양상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유럽과 미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로운 늑대’들의 전쟁이다. 전쟁이 국가 대 국가의 대결에서 국가와 개인, 혹은 국가와 집단 간의 대결로 진화하고 있다. 21세기 시민들은 20세기와 같이 제2차 세계대전이나 월남전 같은 국가 간 전쟁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일어나는 개인에 대한 테러리즘이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미국의 입국 심사에서 과도하고 까다로운 절차는 미국 패권국가의 두려움의 표현이다. 인류는 21세기 새로운 갈등과 문명 충돌,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그 공포는 전통적인 전쟁 상황보다도 시민들을 더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이미 세상에서 전선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개념이 됐다. 공포와 테러는 바로 내 이웃에게 혹은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테러리즘이 공격대상을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 문명만이 아니라,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로 확장할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다는 점이다.
 
첨예화되고 있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의 중재나 해결 방식을 당사자 간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1000년의 역사는 두 문명이 쉽게 화해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당사자들이 합의하거나 타협할 수 없을 때 가능한 대안은 제3자가 중재하거나 조정하는 것이다. 두 문명의 중재와 협력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동아시아 문명이 거의 유일하다. 두 문명을 중재할 만한 역사적 무게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곳은 동아시아를 제외하고 달리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명권에 속하는 현재의 중국과 일본에서 인류의 보편주의는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인권과 민주, 평화, 생태의 가치를 국가 수준에서 실현하거나 그 가능성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일본은 1945년부터 지금까지 편협한 군국주의 노선에서 벗어난 적도 없고, 제국주의 과거사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한 적도 없다. 아베는 오히려 미국의 패권 약화를 계기로 다시 군대를 가질 수 있는 보통국가로 무장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중국은 또 다른 패권주의 국가다.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국가가 아니라, 힘센 형님으로 동생들을 제압하려 하는 위계적인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들은 신중국이 되는 2049년에 세계 초인류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일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에게서 인류의 보편가치와 미래를 찾기는 힘들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원로역사학자인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한국 문명은 두 번의 세계화를 통해 중국 문명과 서구 문명을 포용하고 있는 문명이라고 지적했다. 태반문명에서 한사군 시기에 중국화라는 세계화를 거쳤고, 19세기 이후 서구화라는 또 다른 세계화를 거쳐 한국 문명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한국 문명은 동아시아적인 가치와 서구적 가치가 충돌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융합돼 있다. 그 속에서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 민주, 평화, 생태가 제도 속에서 정착해 가고 있다. 최근 홍콩 우산혁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 문명은 아시아 민주화의 교과서가 되어가고 있다. 이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한국 문명으로 일본의 속 좁은 군국주의적 폐쇄성을 극복하는 것이 광복 100주년에 한국 문명이 일본을 넘어서는 길이 아닐까?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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