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차기태의 경제편편)건강보험 국고지원 의무부터 이행돼야
입력 : 2019-07-10 오전 6:00:00
해마다 6월이면 다음해의 건강보험료율이 결정돼 왔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전통’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2020년도 건강보험료율 책정을 논의했고, 정부는 내년도 3.49% 인상안을 제시했다. 지난 5월 발표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서 예고한 대로 올해와 같은 인상률을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까지 2019년과 같은 인상률을 적용하고 2023년에는 3.2%로 낮출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건정심 8개 가입자단체가 “정부가 국고지원 책임을 100% 지지 않으면 보험료율은 동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 등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2017년 6조8000억원, 2018년 7조2000억원, 2019년 7조9000억원등 해마다 조금씩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법에 규정된 지원비율을 해마다 어겨왔다. 현행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정부는 2007년부터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 20% 가운데 14%는 일반회계에서 지급하고, 6%는 담배세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내놓도록 의무화돼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이를 제대로 지킨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지원비율은 2015년 16.1%에서 2016년 15.0%로 하락하고, 2017년 이후에는 13%대로 더욱 낮아졌다. 올해도 13.6%에 그칠 전망이다. 
 
2007년 이후 정부가 이렇게 떼먹은 지원금 누계는 24조5000억원에 이른다. 또다른 도덕적해이가 아닐까 한다.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가입자단체가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의료비는 지금까지 한국 국민의 허리를 휘게 만든 핵심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중세의 시성 단테의 명작 <신곡>에서 연옥의 영혼들이 짊어진 무거운 바위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문재인정부가 출범 이후 그 바위의 무게를 줄여주려고 상당히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건강보험료를 올릴 요인도 늘어날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더라도 보험료 인상을 정당화하려면 정부가 먼저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 의무란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고지원금을 법에 규정된 대로 납부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 그 의무부터 이행하고 나서 보험료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 
 
게다가 건강보험 적립금이 지난해말 20조5000여억원에서 올해말에는 17조4000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 대상을 확대하다 보면 적립금은 앞으로 더 감소할 것이다. 그렇지만 먼 장래까지 고려할 때 적립금이 과도하고 급격하게 줄어들어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정부의 국고지원 의무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다만 그동안 밀린 국고지원금을 이제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밀린 지원금을 앞으로 몇 년동안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청사진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더욱이 현행 법규는 오는 2022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2023년 이후에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국고지원 비율도 다시 책정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어쩌면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3년부터 시행할 법을 새로 만들면서 기존의 지원금 미지급분을 사실상 ‘탕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상상하기 싫지만 예상해 볼 수도 있는 ‘나쁜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되면 건강보험료를 소폭 올리는 것조차 국민들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주어진 의무를 다함으로써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은 꾸준히 확대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보험료 부담이 다소 늘어나는 것은 아마 불가피할 것이다. 국민들도 앞으로 큰 돈 들일 걱정 없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보험료 일부 인상은 감수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 의무도 빈틈없이 이행돼야 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김진양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