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현대가 대북사업 재개 준비에 돌입했다. 남북 정상이 27일 역사적 회담을 통해 종전선언과 함께 한반도를 평화체제로 전환키로 하면서 경제협력의 발걸음도 빨라지게 됐다. 인고의 10년 끝에 경협의 길이 다시 열리자, 현대는 누구보다 설레고 들뜬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에는 ▲각계 각층의 다방면적 교류·협력과 왕래·접촉 활성화 ▲이산가족 상봉 진행과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10·4선언 합의사업 적극 추진,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동시에 경협 재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달아올랐다. 무엇보다 남북 체제를 기존 긴장과 대결에서 항구적 평화로 전환키로 하면서 정권교체 때마다 되풀이됐던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도 지울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소식을 가장 애타게 기다렸던 이는 현대다.
현대는 1998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이듬해에 대북사업을 전담할 현대아산을 설립,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8년 박왕자씨 피살, 2010년 천안함 사태로 경협이 축소되더니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로 대북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북핵 위기와 남북관계 경색에도 선대회장의 대북사업 유지만은 지켰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현대아산 매출은 2007년 2555억원에서 2017년 1268억원으로 절반이나 줄었고, 같은 기간 직원 수도 1070명에서 142명으로 감축됐다. 2000년까지 부동의 재계 1위였던 현대는 형제의 난으로 그룹이 분리되고 주력 계열사였던 현대상선마저 잃게 되면서 지난해에는 재계 30위권에서도 빠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현대를 끝없는 추락에서 구할 희망이 됐다. 당장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이 현대를 기다린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것은 지난 2000년 8월 고 정몽헌 회장과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 사이에 맺은 이른바 '7대 경제협력사업권'이다. 이는 ▲남북 철도 연결 ▲유·무선 통신사업 ▲북한 발전소 건설 등 전력 공급 ▲통천 비행장 건설 ▲금강산 저수지의 물 이용 ▲백두산과 묘향산, 개성 등 관광지 개발 ▲임진강댐 건설 등에 대한 독점 사업권이다. 2008년 현대는 북한에 5억달러를 지불하고 7대 사업권에 대한 30년 독점권을 얻었다. 장차 대북사업이 단순 교류협력을 넘어 본격적 투자·개발로까지 확장되면 현대는 이를 통해 경협을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는 앞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등을 추진할 때에도 7대 사업권에 속하는 교통, 통신, 전력, 관광사업 등에 대한 선점권을 누리며 다른 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현대 관계자는 "판문점 선언이 바로 경협으로 이어질 것은 아니지만, 그간 준비한 대북사업을 다시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강하는 등 철저한 준비태세를 하고 있다"며 "7대 사업권의 유효성을 분석하고 가변적 상황까지 지켜본 뒤 당국이 승인을 하면 중장기적 전략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로 이어지는 유훈통치의 특성을 고려하면 7대 사업권을 뒤집을 공산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고 정주영 회장을 남북 경협의 물꼬를 튼 선구자로 기리고 정몽헌·현정은 회장으로 이어지는 정통성도 인정한다.
이런 기대감은 시장에도 반영됐다. 정상회담이 있던 27일 비상장사인 현대아산 주가는 장외시장(K-OTC)에서 4만7500원에 장을 마쳤다. 올해 1월2일 1만5000원과 비교하면 216.7% 급등했다. 같은 기간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5만8000원에서 9만9300원으로 61.9% 올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의 주력 계열사로, 현대아산 지분 67.58%를 보유하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엘리베이터의 현재 실적보다는 앞으로의 대북사업 재개에 따른 현대아산 가치 부각의 기대감이 반영됐다"며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아산의 보유지분 가치는 우선 8200억원 정도"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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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각에서는 경협의 신중론도 제기된다. 판문점 선언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남북 사이에 어떠한 경협이라도 재개되기 위해서는 일단 북한에 대한 국제연합(UN) 제재 해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당장 다음달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의 귀추도 살펴야 한다. 현대 관계자는 "지금 누구보다 들뜨고 설레고 벅차지만 현대가 무엇을 하겠다고 구체적 계획을 밝히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섣부른 면이 있다"며 "돌아가는 정세를 보고 남북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이후 올해로 꼭 대북사업 20년째"라며 "그간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기대와 희망이 큰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