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조금은 초췌해 보였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데뷔 이후 다른 작품 촬영 중간에 처음 홍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것 때문에 체력적으로 조금 무리가 있었단다. 물론 워낙 건강한 체력이고, 최근 갓 태어난 딸이 돌을 막 지났다. 가만히만 있어도 힘이 펄펄 날 시기다. 그럼에도 조금은 초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어렵게 ‘그 일’에 대한 질문을 했다. 배우 정우는 ‘질문을 하는 기자도, 답변을 해야 하는 나도 힘이 들 것이다’며 환하지만 무거운 웃음을 머금으며 담담하게 전했다. 물론 고 김주혁과 함께 한 영화 ‘흥부’ 자체의 고민도 담겨 있었다. 공교롭게도 ‘흥부’ 속 김주혁의 퇴장이 현실 속 모습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은 듯 다시 한 번 환함 속에서 무거운 심경을 전했다.
영화 개봉 전 만난 정우는 조금은 힘이 들어 보였다. 누구나 다 아는 고 김주혁의 갑작스런 사고 소식 이후 처음 언론과 만나는 자리였다. 정우를 통해서 그 소식을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고 김주혁의 유작이 된 ‘흥부’에서 정우는 그와 마지막을 함께 했다.
정우, 사진/롯데엔테테인먼트 제공
그는 고 김주혁에 대한 질문에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이후 질문을 하는 기자의 심경도 대답을 해야 하는 자신의 심경도 섞어서 전했다. 어느 누구라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심경이었다. 스스로도 아직은 의지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속내였을 듯하다.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아마도 형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도 나와 가장 많이 함께 한 형이었고. 글쎄요.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할 감정도 많고. 영화를 언론 시사회에서 저 역시 처음 봤고. 여러 감정이 느껴져요. 작품을 함께 하는 동안 정말 많이 의지했던 선배이자 형이고. 기억이 많이 나요. ‘흥부’에 처음 출연을 결정한 것도 선배님들의 합류 소식을 듣고 결정한 거고...”
처음부터 무거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해야 할 질문이었다. 그 역시 이해를 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했다. 받기만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고.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차례 더 궁금한 점을 물었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나 에피소드를 물었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마음속으로는 동료에 대한 이별이 쉽지는 않은 듯 했다.
정우, 사진/롯데엔테테인먼트 제공
“시나리오는 정말 예전에 받았어요.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였고. 그런데 엄두가 안났죠. 사극이란 장르가 쉬운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마음은 가는 데 이걸 선뜻 한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정진영 선배님이나 김주혁 형이 한다는 말을 듣고 ‘그럼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죠. 아직은 저도 도움을 받고 배워야 하는 입장이고. 그런데 그렇게 가셨으니.”
영화 속에서 조혁(김주혁)의 퇴장이 고 김주혁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듯한 인상도 들었다. 정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 마음을 가다듬었다. 기억이 되는 것도 기억을 잊는 것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판단은 관객들이 몫이라고. 이어 영화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곧 그도 환하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얕잡아 봤던 것 같아요. 그게 맞는 말 같아요. 우리가 다 아는 얘기이고, 그래서 쉽게 다가왔죠. 잘 할 수 있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호호. 친근한 거랑 혼동했던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어요. 사실 ‘흥부전’ 토대만 녹아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번외로 다른 얘기가 주를 이뤘고. 그것도 적절히 녹아 있었고. ‘이걸 잘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은 사실 나중에 들었어요. 너무 익숙한 얘기라 쉽게 봤는데. 촬영 내내 정말 고생했죠 뭐. 하하하.”
정우, 사진/롯데엔테테인먼트 제공
영화 속 그가 맡은 ‘연흥부’는 붓 하나로 조선 팔도를 휘어잡는 희대의 문장가다. 아니 대중소설가다. 타고난 필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급기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조항리(정진영)까지 그를 눈여겨보게 된다. 상상력 또한 탁월했다. 생각은 곧 민심으로 이어졌다. 타고난 문장가였고, 태생부터 글의 천재였던 셈이다. 실제 정우는 어떨까. 영화 ‘바람’이 정우의 자전적 스토리인 점은 유명하다. 실제 정우의 집은 서점을 했었다.
“부모님이 서점을 하셨어요. 그런데 책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았네요(웃음). 책을 좀 많이 날랐을 뿐입니다. 글씨도 되게 못써요. 아주 악필이에요. 영화 속 서예 장면도. 하하하. 참고로 글을 쓰는 장면은 고심을 좀 많이 했었어요. 괴짜 흥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자세를 해보기도 하고, 아무튼 실제 정우는 연흥부와는 많이 다릅니다.”
데뷔 이후 첫 사극이라 한복 맵시도 스스로 기대가 됐단다. 또한 흥부의 톤을 잡아가는 과정도 많은 고민을 스스로에게 던져줬다고. 마냥 밝힌 얘기는 아니기에 다양한 모습을 고민하며 ‘흥부’란 인물을 설정해 나갔다. 무엇보다 본인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원칙 하나는 지켜가고 싶었다고 한다.
정우, 사진/롯데엔테테인먼트 제공
“초반에는 대중 작가이기에 낯설지 않은 좀 풀어진 모습을 그려봤죠. 하지만 중반 이후 생각을 깨우치면서 전체적인 톤도 바뀌고. 무겁다? 묵직해진다고 할까. 아니 진지해 지는 거죠. ‘쉽게 가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 하나를 잡고 갔던 것 같아요. 뭔가 고민이 묻어나 보였으면 하는. 아! 한복을 작품 속에서 처음 입어 보는데 되게 잘 어울리던데요. 첫 피팅 당시에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지인에게 전송하니 ‘꼭 그 시대사람 같다’라던데요(웃음)”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엄청난 신드롬의 주인공 된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브라운관 보단 스크린에 주력하면서 배우로서의 풍모를 더욱 쌓아가고 있다. 2001년 영화 ‘7인의 새벽’에서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찰나의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젠 충무로의 중심이 된 그다.
“에이, 제가 무슨 중심이에요. 아휴~(손사래) 글쎄요. 절실함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간을 버텨온 끈기도 있는 것 같고. 잠시 그 절실함을 잊었던 순간도 있고. 인기? 그거 진짜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란 것도 알고요. 그저 잊지 않으려고 해요. 처음 제가 배우가 되겠다고 올라왔을 때 그때의 마음을. 매 순간 그걸 잊지 않는 배우가 되려고요.”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무명에서 스타로 거듭나기를 시도한 정우는 최근 들어 스크린에만 집중하고 있다. 촬영 현장의 시스템, 배우로서의 작품 집중도를 거론할 때 누구나 ‘드라마’보단 ‘영화’를 첫 손에 꼽는다.
정우, 사진/롯데엔테테인먼트 제공
“아휴~~~ 아니에요. 제가 무슨 가릴 처지라고. 좋은 작품이 있으면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이면 영화 드라마 전 가리지 않아요. 장르도 전 구분하지 않습니다. 좋은 작품 있으면 누구라도 추천해 주세요. 제가 무슨 스타도 아니고. 하하하. 드라마 영화 어디에서나 연기에만 집중하는 배우 정우이고 싶습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