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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제2 주인공 '공간'…관객 열기 '가늠자'
‘1987’의 광장, ‘남영동 1985’의 고문실
입력 : 2018-01-11 오후 12:09:4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스토리가 생산되기 위해선 인물이 있어야 한다. 그 인물은 관계를 통해 사건을 만들어 낸다. 사건은 인물의 감정을 통해 관람의 '온도'를 결정 짓는다. 차갑게 혹은 뜨겁게. 이 모든 것을 끌어 안는 지점은 바로 '공간'이다. 공간은 인물과 감정, 사건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전환점을 이끌어 내는 제2의 주인공이다. 최근 극장가를 장식한 현대사 배경 영화를 보면 공간의 중요성은 여실히 나타난다.
 
영화 '1987' 중 한 장면. 사진/영화사 
◆ ‘1987’ 광장의 뜨거움
 
‘광장의 역사’는 이제 우리에겐 익숙한 단어다. 촛불혁명을 통해 이뤄진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건은 그 '결정판'이었다. 물론 그 시작도 분명 존재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이다.
 
뚝배기의 진득한 뜨거움처럼 식을 줄 모르는 ‘1987’ 흥행 열기는 ‘광장’의 의미를 온 몸으로 체득한 바 있는 386세대의 '부채의식'에서 출발했다. 그 의식은 미안함이다. 미안함은 박종철, 이한열 두 열사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광장의 상처로 남아 있다.
 
‘1987’에서 사실 광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곳으로 모이기 이전까지 어느 누가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에 집중한다. 살아 숨쉬는 광장을 위해 인물들은 고통 받고 쓰러지고 무릎꿇고 또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살아 있는 광장을 죽이기 위해 또 누군가는 고통을 주고 무릎을 꿇리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1987’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은 광장의 의미와 ‘1987’에 대해 “그 시절을 겪은 386세대와 지금의 어린 세대가 공감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면서 “매케한 최루탄이 가득했던 광장과 촛불과 외침이 가득했던 지금의 광장을 비교해 달라”고 말했다. 세월을 뛰어 넘어 광장이 갖는 의미의 변화를 전하고 있었다.
 
장 감독의 설명처럼 ‘1987’ 속 인물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광장 속 외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광장은 답한다.
 
영화 마지막 연희(김태리)가 바라 본 광장의 뜨거운 외침은 그래서 ‘1987’의 온도를 결정 짓는다. 격동의 현대사는 그렇게 광장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남영동 1985' 중 한 장면. 사진/영화사
 
◆ ‘남영동 1985’ 공간의 고문
 
‘1987’의 흥행과 함께 주목 받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사실상 ‘1987’의 프리퀄로도 볼 수 있는 ‘남영동 1985’다.
 
2012년 개봉과 함께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1987’ 속 주요 배경 중 한 곳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무대다. 고 김근태 전 의원이 당한 실제 고문 피해를 그린 이 영화는 한 가지 색다른 설정을 등장시킨다. 영화 서사 전체의 90% 이상을 한 공간에서 그린다.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안이다.
 
회색을 넘어 검은 빛깔의 콘크리트 공간은 주인공 김종태(박원상)를 집어 삼킨 육식동물에 비견된다. 그 공간과 대비해 이질적인 존재감으로 자리한 조사관들은 육식 동물의 몸 속에 자리한 기생충과도 같다. 김종태의 육체는 그 기생충들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파괴돼 갔다.
 
무엇보다 이 공간이 섬뜩한 지점은 각각의 인물들이 갖는 결의 흐름을 느낄 찰나의 시간조차 주지 않는 압도성이다. 무채색 빛깔의 공간은 인물의 피부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급기야 폐쇄된 그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인물의 고통스런 외침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1987’ 속 광장의 외침이 갖는 ‘뜨거움’과는 다른 극단적 생존성만 남은 마른 외침이었다. 그 울림은 먹이를 뜯어 먹은 육식 동물의 '아가리' 속에서 죽음 직전의 한 숨을 내 뱉는 생명의 모습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남영동 1985’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힘’이 가하는 인격 말살의 폭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은 “관객도 함께 러닝타임 동안 갇힌 공간에서 김종태가 느낀 고통을 오롯이 느끼길 바랐다”면서 “배우도 관객도 이야기도 함께 아파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공간에 갇혀야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위부터) 영화 '암살' '소수의견' '변호인' 중 한 장면. 사진/영화사
 
◆ 시대의 아이러니
 
공간은 시대의 괴리감을 담는 그릇으로도 영화 속에서 사용됐다. 먼저 ‘1987’과 ‘남영동 1985’의 시작점과도 같은 인물이 된 일제 강점기 대표적 악질 경찰 노덕술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 속 염석진(이정재). ‘암살’에서 그는 변절의 아이콘이자 희대의 악인으로 그려진다. 특히 극중 염석진이 자기 변론을 하는 법정 장면은 여러 관객들에게 판단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엄숙주의를 자처하는 법정의 모습과 그가 펼치는 자신만만의 이질감은 공간의 흐름을 완벽하게 바꿔 놓았다. 관객과 극중 인물들이 완벽하게 다른 곳으로 달려버린 공간 활용의 명장면이었다.
 
법정 장면은 여러 영화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암살’에선 자신을 비난하는 방청객과 기소권을 가진 검사 측을 향해 염석진의 질문이 쏟아진다. “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그래서 ‘암살’ 속 법정은 시대의 아이러니가 만들어 낸 괴리감의 공간이었다.
 
용산 참사를 전면으로 다룬 ‘소수의견’에서도 법정 장면은 나온다.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죽인 사람은 있다. 영화는 ‘누가 그를 죽였냐’를 묻지 않는다. 단지 그가 왜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 장면은 영화 내내 이어지는 법정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천천히 천천히. 그 공간에서 누구는 인정을 하고 누구는 울부짓고 누구는 악다구니를 쓴다. ‘소수의견’은 법정 공간을 통해 그들의 이유를 듣고 관객들을 배심원으로 이끌어들였다. 아이러니의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도구가 바로 ‘소수의견’ 속 법정이었다.
 
법정 공간 활용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1000만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다. 부림사건과 고 노무현 대통령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송우석(송강호)은 차동영(곽도원)과 얼굴을 맞대고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일갈을 주고 받는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색깔을 그 법정이란 공간 속에서 완벽하게 나뉘어져 버렸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결정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전한 채 말이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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