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2008년 12월 한 50대 남성이 등교 중이던 9살 여아를 무차별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학생은 신체 주요 부위가 80% 이상 파열됐다. 최종적으로 내려진 형벌은 징역 12년. 3년 후면 이자가 출소한다. 그의 이름은 조두순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으로 사이코패스 흉악범죄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김일곤·조두순·유영철·강호순 등 희대의 살인범들은 모두 사이코패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범죄빈도가 잦은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한 사회적 충격은 매우 크다. 그러나 형사정책적 접근이 미미한 상태이고, 법원의 양형면에서도 이들의 잔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사이코패스 범죄의 실체와 문제점을 전문가들의 진단과 판결을 통해 짚어본다.(편집자주)
서울중앙지법은 2004년 12월13일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사진/뉴시스
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집으로 불러 성추행하고 저항하자 살해한 이영학을 전문가는 '경계성 사이코패스'로 진단했다. 경찰이 이영학을 상대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R)검사를 한 결과 40점 만점에 25점이 나왔다. 체크리스트에서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본다. 과거 3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한 김일곤은 33점, 8세 아동을 성폭행한 조두순은 29점,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한 유영철은 38점, 8명을 살해한 강호순은 27∼28점이었다.
사이코패스는 윤리나 법적 개념이 희박해 죄책감이나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학은 연쇄살인범은 아니지만 의붓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아내의 자살을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았으며, 아내의 시신 옆에서 태연히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아내를 동원해 1인 퇴폐마사지 업소를 운영하며 성매매를 알선하고 휴대폰에 성관계 영상을 갖고 있었다.
"내 억울함 밝히는 게 피해자 위한 것"
김일곤은 피해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고, 시신 실린 차량에서 잠을 잤다. 공판에서는 "내 억울함 밝히는 일이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도 했다. 유영철은 자신이 인육을 먹은 이유에 대해 "정신이 맑아지고 먹고 나면 몸이 좋아진다"고 밝혔으며, "검거 안 됐으면 100명은 더 살해했다"고 말했다. 강호순도 "내 얘기를 책으로 써 아들에게 인세를 주겠다"며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법원은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집행은 하지 않고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사형 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1997년 12월 이후 20년째 집행되지 않고 있다. 김일곤은 지난해 무기징역과 함께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수치인만큼 재범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돼 30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명령받았다. 조두순은 징역 12년형과 7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선고받았으며, 2020년 12월 출소한다. 최근 전자발찌를 훼손하거나 착용한 채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있어 재범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유영철 사건' 이후에야 법원도 주목
사이코패스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감정을 느끼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이용하는 소시오패스와는 다르다. 전문가에 따르면 미숙하고 통제되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상습적인 일탈 등을 통해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 이후 법원에서도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본격 통용됐다.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할 수 있는 사유로 인정하거나 적어도 감형 사유로 인정해 다른 심신장애와 같게 판단하기도 했다.
양형기준에 사이코패스는 명시돼 있지 않으며, 다른 정신질환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별다른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미국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책임능력이 배제될 수 있는 정신질환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사이코패스조차 자신의 질환을 방어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선·후천적 요인 모두가 원인
전문가들은 생물학적과 사회환경적 요인 등 선·후천적 요인을 사이코패스의 원인으로 본다. 유전론자들은 외부와의 공감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전두엽의 기능 장애를 제시하며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주장을 한다. 환경론자들은 부모의 애착 결여 등 정상적인 양육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뇌 기능의 비정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사이코패스의 존재 비율이 0.14%로 3.2%인 서구사회에 비해 낮은 이유를 가족적 유대라는 문화적 특성에서 찾았다. 이영학도 어린 시절 희귀병을 앓으며 놀림을 받아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유영철은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강호순·정남규 등도 공통으로 유년시절에 문제를 겪었다.
이에 따라 사이코패스에 대한 형사처분을 다른 정신질환과 분리해 기술하는 등 새로운 법 규정으로 현재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것도 주요 대책으로 꼽힌다. 미국 모범형법전은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자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정신질환자에서 제외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사이코패스에 대한 명확한 정립과 진단을 통해 형사 정책적인 고려와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진혁 경남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선·후천적 원인을 파악해 사이코패스를 양성하는 환경적인 문제점을 제거하고, 가정과 학교에서 애정 어린 양육이 필요하다"며 "치료에 의한 개선 가능자를 조기에 식별해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만일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전문적 치료 처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치료감호 등 사법시스템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을 일인칭 시점으로 다룬 <종의 기원> 저자 정유정은 언론인터뷰에서 "아직은 악인의 심연을 꿰뚫어 보기 힘들지만, 자꾸 주의해서 보고 '왜'라는 물음표를 달면 언젠가 그 정체를 알게 되고 대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