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국가가 낙태와 단종을 강제한 책임을 져 ‘한센병 환자’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5일 강모(81)씨 등 한센병 환자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청구사건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 국가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않았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또 “이런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며,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한센인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피고가 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했다면 설령 이러한 조치가 정부의 보건정책이나 산아제한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피고 국가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인 원고들에 대해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 등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그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위험성과 전염위험성, 치료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그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원고들이 수술에 동의 내지 승낙했더라도 원고들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보일 뿐 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는 그 소속 의사 등이 행한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배상을 청구할 기간이 지났다는 국가의 주장도 물리쳤다. 재판부는 “한센인피해사건법에 의한 피해자 결정을 받은 원고들에게는 그 결정 시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원고들이 피고 국가의 입법적 조치를 통한 피해보상 등을 기대했지만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자 비로소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며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피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씨 등은 한센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국립 소록도 병원 등에 수용돼 입원해 있던 중 1950~1978년경까지 강제로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이후 2007년 10월 ’한센인피해사건법‘이 제정되면서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강씨 등을 한센인 피해자로 결정했고, 강씨 등은 이 결정을 근거로 국가의 불법행위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국가는 원고들에게 3000만~4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이에 불복해 국가가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