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답변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원칙'이다. 그동안 임 위원장은 구조조정 상황과 전망에 대한 질문에 유독 '원칙'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왔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만큼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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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진행 과정에서 원칙은 추진력을 붙여줬지만, 결과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원칙이라는 단어는 국회의원들의 화만 돋우웠다. 임 위원장의 요지는 이렇다.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원칙에 따른 것으로 어떠한 다른 요소가 없다.", "원칙에 따른 것인데 결과만 놓고 얘기하면 안된다." 한 야당 의원은 "국회의원은 원칙을 몰라서 묻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그동안 강조해온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당국은 신규 자금 지원은 없다면서 왜 자본확충 한도를 늘려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가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정리할 각오가 없는데 대우조선 이해관계자들이 뼈를 깎는 생존에 나서기는 만무하다.
국내 1위, 세계 7위 한진해운를 정리하면서 우리나라 해운업 경쟁력을 지키겠다는 대책들이 모조리 실패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공언했던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알짜자산 인수는 요원하고, 한진해운 퇴출 효과로 운임료는 치솟고 있다. 다른 입김이 있었던게 아니냐는 의혹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현실은 기대와 반대로 흐르고 있다.
임 위원장이 원칙을 강조하는 모습은 묘하게 박근혜 대통령과 닮았다. 박 대통령 역시 정치와 외교, 국방, 사회 전반의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원칙을 강조해왔다. '배신의 정치', '진실한 사람'이라는 말도 원칙과 의리를 저버린 사람들을 골라내면서 나온 것이다. 박 대통령의 원칙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무너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검찰 조사를 앞뒀으면서도 '헌법 수호'라는 방패 뒤에서 국정기조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임 위원장 역시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원으로 평가대에 올랐다. 갈 길이 멀지만 만에 하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하더라도 임 위원장이 넘어야 할 큰 산은 구조조정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다. 기업 구조조정은 우리나라 경제뇌관 가운데 하나이며, 정책 성패에 따라 경제사령탑이 갈리기도 한다. 임종룡 위원장은 초라한 구조조정 실적을 언제까지 빛 바랜 원칙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지, 무너진 원칙을 어디서부터 다시 세워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