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우리는 생태계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 등장한 자웨팅 러에코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남긴 말이다. 스티브잡스를 연상케하는 검정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른 그는 제품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의 문턱을 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러에코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스마트폰 러프로3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이날 러에코가 선보인 제품은 스마트폰, TV, 스마트 자전거, 가상현실(VR) 헤드셋, 자율주행 전기차 등으로 다양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로 출발한 러에코의 이력을 감안하면 뭔가 생소한 조합이다. 행사를 지켜본 한 미국 언론이 "중국의 넷플릭스가 온갖 물건을 팔러 미국에 왔다"고 평할 정도다. 하지만 신제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생태계'다.
러에코라는 사명에도 녹아있듯 스마트 생태계 구축은 러에코 성장 전략의 핵심이다. 사용자가 같은 회사의 기기와 온라인 서비스로 연결돼 있을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자웨팅의 발상에서 출발했다. 러에코의 모든 제품에는 '생태계 사용자 인터페이스(EUI)'라는 독자 사용자경험(UX)이 탑재돼 있는데, 사용자들은 이를 기반으로 러에코의 제품들을 넘나들며 콘텐츠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에서 보던 영상을 연결해 TV나 자동차에서 볼 수 있고, 스마트 자전거에서 받은 알림을 스마트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식이다.
러에코는 지난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스마트폰, TV, 스마트 자전거, VR 디바이스, 자율주행 전기차 등을 공개했다. 사진/뉴시스·AP
프리미엄급의 성능을 지녔음에도 일반 제품의 반 값에 판매되는 스마트폰과 TV는 러에코 생태계 확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실질적인 이득은 본업인 동영상 스트리밍이나 광고 호스팅 등에서 얻고자 한다. 샤오미 등 다른 중국 업체들이 낮은 가격 만으로 승부를 거는 것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사실 러에코가 생태계에 관심을 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지난 2004년 '즐겁게 보다'라는 뜻의 '러스'란 이름으로 시작한 러에코는 플랫폼을 통해 가입자에게 비디오 콘텐츠와 게임 등을 제공하는 중국 최초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다. 2010년 8월에는 중국판 나스닥이라 불리는 차이넥스트에도 상장됐다. 10만편의 드라마와 5000편의 영화 판권을 확보하는 등 동영상 콘텐츠 부문에서 입지를 꾸준히 강화해 왔지만, 동영상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TV 이외 다른 분야로의 외도는 감행하지 않았다.
그러던 2015년 1월 북미, 유럽, 홍콩 등을 수 개월간 둘러보고 귀국한 자웨팅은 스마트카와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러1, 러1프로, 러맥스 등 지난해 4월 첫 출시된 스마트폰들은 연말까지 400만대 이상이 팔렸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에서 러에코는 퀄컴의 스냅드래곤820 칩을 세계 최초 탑재한 스마트폰 러맥스프로를 공개하면서 연간 판매 목표를 1000만대로 제시했다.
유기성 있는 사업 영역 확장으로 기업 가치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4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자웨팅의 자산 역시 급속도로 불었다. 지난해 포브스 중문판이 발표한 중국 부호 순위에서 자웨팅은 381억위안(약 6조3700억원)의 자산으로 17위에 랭크됐다. 78위에 머물렀던 전년도에서 수직 상승했다. 탄광촌 출신의 가난한 청년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중국 IT 업계의 주목받는 경영인에 오른 것.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를 위해 자웨팅은 올해 초 사명을 러에코로 변경하고 '플랫폼, 콘텐츠, 디바이스, 애플리케이션'을 아우르는 완벽한 생태계, 이른바 '러에코 모델'을 제시했다.
자웨팅 러에코 창업자 겸 CEO. 그는 포브스 중국판이 선정한 중국 부호 17위에 올랐다. 사진/뉴시스·AP
러에코의 미국 진출은 낙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프리미엄 사양에 399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의 스마트폰 러프로3와 85인치 돌비비전을 내장했으나 3999달러의 파격적 가격에 공급되는 UHD TV U맥스85 모두 러에코의 전용 온라인 몰에서만 판매돼 고객과의 접점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미국 현지 소비자들을 겨냥해 MGM, 라이온스게이트 등 대형 제작사와 파트너 계약을 맺었지만, 이 역시 넷플릭스나 훌루 등 현지 업체와 비교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미국 시장 진출을 차근히 준비해온 점은 긍정적이다. 러에코는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2500평 규모의 사무실을 개설한데 이어 6월에는 산타클라라 인근 부동산 6만평을 매입했다. R&D 센터를 포함해 1만2000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사옥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한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를 북미 지역에 안착시키는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 데니 보우먼과 숀 윌리엄스 등 전문가들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지난 7월에는 현지 중저가 TV 제조사 비지오를 20억달러에 인수해 단숨에 글로벌 3대 TV 업체로 도약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