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한 시중은행을 방문해 '유연근무제' 운영 사례를 칭찬했다. 유연근무제란 근로자 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주5일 전일제 근무 대신에 재택근무나 시간제, 요일제, 원격근무 등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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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유연근무제 확산이 '일-가정 양립의 선순환 시스템 구축'을 위한 중요한 과제라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금융권에서는 정부나 금융당국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꼬집고 있다.
성과주의를 강제적 또는 급진적으로 도입하면서 9월 총파업 얘기가 나올 정도로 노사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데, 노사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두고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한가한 소리'라는 것이다.
한 은행 본점 직원은 "유연근무제가 '저녁이 있는 삶'을 갖자라는 취지라고 하지만 내 삶의 질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5일 근무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그것도 시간이 모자라 일거리를 집으로 싸갖고 간다고 하소연했다.
한 은행 센터장은 "출근 시간을 약간 뒤로 미루는 수준에서 시행할 수 있겠지만 원격근무의 경우 영업점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출근시간 조정도 그만큼 다른 직원이 업무를 떠안아기 때문에 직원들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금융권에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유관기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은행들이 줄줄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년 10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세계 어디에도 오후 4시에 문닫는 은행은 없다"고 말한 이후 은행들은 내부적으로만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줄줄이 탄력점포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1여년새 탄력점포수는 2곳 늘어나는데 그쳤다. 사실상 변한 게 없는 셈이다.
물론 유연근무제의 취지는 좋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과 영업점 전략을 효율적으로 가져가고, 직원 입장에서는 삶의 질을 챙긴다는 설명도 그럴 듯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당국과 은행들이 성과연봉제를 강제적으로 이식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전체 임직원에 대한 성과보수체계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을 마련했고, 은행들은 이에 맞춰 정관을 개정하려고 한다.
시중은행 임원 마저도 "금융당국은 성과연봉제 확대와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인력이나 영업점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둘은 현재 금융업 상황에서는 양립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평가했다. 정부나 금융당국에서는 유연근무제에 대해 금융권 노사를 가리지 않고 왜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