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철강업계가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산 철강재를 견제하기 위한 각국의 보호무역조치에 수출전략을 재점검해야하는 상황이다. 중국발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구조조정 이후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실 선임연구위원(박사)는 "국내 철강업계가 조선, 자동차, 건설 등 대형수요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 수요에 대응하면서 장기적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해 나가야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구조재 공급 역할에서 벗어나 철강재를 대제할만한 소재의 등장에도 대비해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철강산업은 중후장대형 자본집약 산업으로, 철강설비가 가동되면 고정비에 비해 가변비용이 매우 낮다는 특징이 있다. 수요가 부진한 국가에서 과잉설비가 나타나면 밀어내기식 수출을 감행하게 된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국가에서 적극적인 무역구제조치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 박사는 "지금의 신보호주의 기저에는 세계적인 철강 과잉설비라는 수급구조와 아울러 가동률을 유지하려는 철강업체들의 생산과 수출압력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과 같은 규모의 철강소비국이 나타나지 않는 한 과잉설비 규모를 해소하기 어려우며, 철강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인도, 베트남 같은 신흥국에서 수요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철강설비를 늘려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도 과잉공급을 우려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철강재에 대한 신보호무역주의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정 박사는 전망했다.
그는 "향후 철강제품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면서 "국제적으로 철강 수요가 늘어나 수급불균형이 해소되거나 과잉설비가 극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과잉공급상황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철강제품은 전년에 비해 31%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국산이 40% 증가했고, 전체 수입량 중 65%를 차지해 한국 철강시장은 여전히 수입재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수입철강재에 대해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아 미국과 중국 같은 주력 시장에 함부로 목소리를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H형강에 대한 반덤핑 제재조치가 내려진 것이 유일하다.
정 박사는 "미국과 유럽 등이 다자간 철강협정(MSA)를 맺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무역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주력 시장인 중국에 대해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중국철강재 가격이 중국 내 가격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낮아야 제소가 가능한데, 국내 가격이 중국보다 높다는 점도 덤핑 판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 박사는 "중국에서는 중국이 판게 아니라 한국에서 (중국철강재를)찾는 것이라고 항변한다"고 전했다. 특수한 강종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중국 간 품질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업체들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철강업계가 조선과 자동차 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정밀기계, 플랜트 등 소량수요산업에 집중해 포트폴리오를 늘려나가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포스코
최근 중국 정부가 바오산과 우안강철을 합병해 남중국 철강그룹으로, 허베이와 서우강그룹을 합병해 북중국 철강그룹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소 철강사들이 이에 흡수될 수도 있어 중국 정부의 철강업계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철강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오는 2020년까지 철강생산량을 1억5000만톤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기대감은 어느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정 박사는 "지금까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이해관계가 달라 실제적인 설비감축과 구조조정이 쉽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지방정부에 대한 실적에 따라 평가하겠다는 조치까지 내놓고 있고 있어 중국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높은 의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구조조정이 단행되면 밀어내기 수출이 줄어들고, 국제가격도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1억 톤 가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세계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중국의 구조조정 '그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설비경쟁력과 공정기술을 높이고, 제품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중국의 철강제품이 최인접국이면서도 수입장벽이 낮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경우, 우리 업체들로서는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분기와 2분기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가 호실적을 내며 구조조정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에 대해 정 박사는 경계감을 나타냈다. 정 박사는 "작년말과 올해 건설경기 덕을 봤지만 향후 이 정도의 건설수요가 다시 생길지는 의문"이라며 "내년 이후 다시 건설부문 경기가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으로, 철강부문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업체들의 실적 개선과 재무적인 관점에서는 타당하지만 수급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해야한다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국제 철강시장은 더 이상 작년말과 같은 파괴적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급구조상 이전과 같은 호황기로 진입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구조적인 수급불균형과 무역 구제 조치 강화, 수요 둔화 등의 상황이 개선가능성이 요원한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박사는 "지난 20여년간 중국의 부침에 의해 급경사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셈이지만, 지금의 수급불균형과 보호무역주의 등이 일반적인 상황이 되는 'New Normal(뉴노멀)'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국내 철강업계가 조선과 자동차, 건설 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다품종 소량수요 산업 성장에 대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철강 수요가 대량 수요에 기반한 양적 성장 단계를 지나 제품 세분화와 생산구조 고도화가 요구되는 성숙단계로 진입하고 있어 자동차용 특수강에 편중된 지금의 구조를 바꿔나가야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처럼 소량의 수요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면서 "기계와 정밀부품, 플랜트 등 국내 수요가 다양해진 부분에 주목해 다양해진 스펙들을 따라가면서 품질과 공급역량을 만든 다음 중국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소재산업에도 집중해야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철강을 대체할만한 신소재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비철금속과 티타늄,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 등 철강을 대체할만한 소재가 계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비규제 등 여러 이슈를 감안한다면, 향후 철강재를 못 쓰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철강재가 지금의 구조재 공급 역할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면서 "철강수요구조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생산공정과 제품구조의 포트폴리오를 개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