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토마토칼럼)불편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
사회부 박용준 기자
입력 : 2016-07-20 오전 6:00:00
박용준 사회부 기자
얼마 전 뜻하지 않은 일로 다리를 다쳤다. 다시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지만, 덕분에 한동안 입원은 물론이고 휠체어에 목발 신세까지 지게 됐다.

내게 주어진 불편함을 온몸으로 견디는 과정에서 환자가 아니었다면 대수롭지 않았을 일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보니 평소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물리적 거리가 이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심리적 거리로 느껴졌다.

병원, 아파트, 상가, 관공서 등 주위에 설치된 계단 하나하나가 마치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단층처럼 다가와 계속 평지를 찾아 돌아가야만 했다. 몇몇 건물 입구에 설치된 휠체어 경사로는 너무 가팔라서 ‘능력자’ 수준의 팔 힘이나 성인 남자에 준하는 보호자 없이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은 휠체어 이동 동선과 어쩌면 그리 일치하는지 작은 요철에도 힘겨운 나를 더욱 괴롭혔다. 어느 동네나 대부분의 보도블록은 움푹 파이고 깨져 있기 일쑤여서 간단한 보도블록 이동이 장애물 달리기보다 험난했다.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탓에 장애인 콜택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고, 마을버스는 저상버스를 찾을 수 없어 아예 포기했다. 또 사람들과 섞일 만한 장소를 갈 때면 어김없이 마주하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은 점점 내 활동반경을 점점 좁혀만 갔다.

휠체어에서 목발로 바뀐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네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마주쳤다. 목발 짚은 사람을 처음 보는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이는 “아저씨, 어디 아파요?”라고 물었다. 아이의 호기심에 응답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 엄마는 “이런 아저씨랑 얘기하지 마”라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아이를 낚아채 내 앞에서 사라졌다. 아동범죄가 흉흉한 시대에 ‘이상한 아저씨’를 피할 마음이었겠지만, 사실 아이에게 내가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쌓일 때마다 내가 먼저 그런 상황을 피했고, 외출횟수를 줄이게 됐다. 
 
몇 년 전 시각장애 특수학교 학생이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 반대편 승강장 전동차 진입 신호를 착각하는 바람에 열차에 치어 숨졌다. 사고 전에도, 이후에도 특수학교에서는 지자체에 해당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설치를 요청했지만, 얼마 후 나온 해당 노선 스크린도어 설치계획에서 이 역은 유동인구가 적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중으로 밀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인들은 대중교통부터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각종 정책 결정과정에서 사회약자 배려를 말로만 외칠 뿐 실제로 장애인이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지어 장애인 정책마저도 장애인 없이 비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어림짐작으로 가이드라인이나 규정, 실제 집행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애인을 ‘배려’하게 되면 예산이 많아져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장애인들이 항의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최근 인터뷰한 문병길 서울시농아인협회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대뜸 내게 수화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친구 중에 장애인 친구가 있나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왜 나는 장애인 친구가 없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불편함을 몸소 느낀 이제서야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아직 진정으로 불편함을 이해하고 느끼고 나눌 준비가 덜 됐음을 깨달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선 긋고, 단지 적당히 지원해야 할 복지 대상으로만 인식해서는 앞으로도 장애인은 ‘내 친구’가 아닌 ‘그들’로만 남을 뿐이다. 마치 선심 쓰듯이 말하는 ‘배려’ 대신 재는 것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작은 장애’가 가져다 줄 불편함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박용준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