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브렉시트,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입력 : 2016-06-28 오전 8:00:00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월요일 아침 개장한 한국 증시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증시 폭락, 외환 폭등이 일어날지 모두가 주시했다. 예상과 달리 지수는 소폭 반등했다. 우려에 비하면 시장은 냉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한국, 일본으로부터 출발한 증시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오늘부터 더 큰 눈덩이로 불어나서 한국 경제에 충격을 주는 일이다.  
 
런던발(發) 브렉시트는 예고된 위기다. 2013년부터 꾸준히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가 지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경제의 레짐(체제)을 형성했던 '워싱턴 컨센서스'는 그 자체로 결함을 지니고 있어, 거의 10년을 주기로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그 10년 주기가 2015년, 2016년, 2017년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됐었다. 이 위기는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경제의 경착륙 ▲유럽연합의 붕괴 중 어느 하나가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한 시나리오였다.

다소 의외는 유럽연합의 붕괴가 남유럽이나 동유럽이 아니라, 그 중심부인 영국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지난해 5월 보수당이나 노동당 모두 과반이 없는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던 총선에서 캐머런 영국 수상은 영국독립당 등 우파들의 지지를 결집하기 위해 레토릭 수준에서 '브렉시트'를 선거 공약으로 던졌다. "설마" 하면서 던진 승부수, 브렉시트가 어느 순간 통제불능의 불가역적인 현실이 돼 버렸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영국인들의 탄식으로 세계는 수습 불능의 런던발 '폭풍의 언덕' 앞에 섰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여곡절 속에서 나선형으로 나아간다는 속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세계정부 혹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인류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기후변화와 생태복지, 글로벌 불평등 완화 등의 지구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정부의 초기형태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유럽연합은 선도적인 모범 모델이었다. 그 속에서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회고적인 영국의 노령세대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인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문제는 외부의 충격에 대비하는 우리 정부의 역량이다. 기회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위기 때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자본의 속성을 고려, 선진지수인 MSCI에 한국 신흥국 지수를 편입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재벌개혁 등 지수에 편입되기 위한 사전 절차를 원하지 않아 한국 증시는 2017년 심사를 다시 기다리고 있다. 지금 한국 증시가 이 선진지수에 들어있었다면 안전자산으로 평가돼 일본 엔화 강세와 같이 해외 자본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정부 때 강만수 경제팀에 의한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으로 국제자본의 신뢰를 잃어 이번 위기에도 일본처럼 자본 유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자본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올리는 방법 이외에 다른 정책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 금리를 올리는 순간 기업의 줄도산과 가계부채로 인한 가계 파산으로 한국 경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제2의 IMF 외환위기 같은 상황을 맞게 된다.
 
예방적 거버넌스(Anticipatory Governance)가 절실한 이유다. '환율 1200원 총력 방어'와 같은 단편적인 표준작업절차(SOP)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약이 아니라 독이다. 정부는 외환시장이나 증시에 외부변수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둔 개입절차가 표준화되어 있고, 관료들은 그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위기가 그 범위를 넘어설 때는 백지상태에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브렉시트는 1945년 전후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으로 새로운 시대로 가는 입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50년 유럽연합 체제의 붕괴로 유럽, 북미,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3각 글로벌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때문에 정부가 갖고 있는 위기대응의 매뉴얼들은 문제해결의 지침이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십상이다.
 
400년 전 임진왜란 전야에 이순신은 전쟁준비를 끝내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장계를 선조에게 올렸다. 그는 16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의해 시작된 대항해 시대의 파고를 동아시아적 방식으로 대비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도 관료적인 매뉴얼에 위기대응을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예방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 이래로 글로벌 경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격랑 속에 놓여 있다. 브렉시트의 위기가 파랑으로 단시일 내에 잦아들지, 아니면 그 누구도 걷잡을 수 없는 폭풍 속으로 들어갈지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 정부가 가진 위기 대응의 매뉴얼로는 예고된 위기들에 대한 예방적 거버넌스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400년 전에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은 위험회피적 동기로 눈앞의 위기를 애써 외면했다. 인간은 원래 보수적 의사결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한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은 어떠한가.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최병호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