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법정관리보다 회사를 살려서 어떻게든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찬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외줄타기입니다. 돌아갈 길이 없어요"
이틀 연속 열린 현대상선 사채권자집회에서 만난 한 투자자의 자조섞인 푸념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 측의 조정안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고, 일방적으로 부채비율기준만 강요하는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현대상선의 정상화를 바라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뜻은 같아 보였다.
현대상선 정상화를 위한 빚 줄이기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선주로부터 배를 빌린 비용인 용선료를 깎는 협상을 벌이는가 하면, 현대상선 회사채를 가진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에게 다음에 갚겠다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용선료 협상도 세부 조율 사항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타결된 것으로 업계에서는 간주하고 있다.
다섯번의 집회를 거쳐 8000억 규모의 채무도 재조정했다. 정부가 제시한 부채비율 400% 달성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채무재조정, 용선료 협상, 해운동맹 재가입으로 이어지는 관문을 통과하면 마치 현대상선이 정상화의 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채권단이 내건 자율협약 조건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세계적으로 저성장기조가 계속되면서 자연스레 물동량도 줄고 있다. 지금의 불황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해외 선사들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단순하게 4개였던 기존의 해운동맹 갯수가 내년부터 3개로 줄어드는 것만 봐도 시장의 '파이'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상선을 비롯한 국내 양대선사가 위기에 처한 이유 중 하나다.
현대상선이 '제대로'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원가경쟁력을 갖춘 대형선이 필요하다. 고효율로 원가를 한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대형 선박 보유 여부가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재편된 '디얼라이언스' 동맹에서도 1만4000TEU급 대형선의 소유 여부가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행히도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이러한 컨테이너선을 한 척도 갖고 있지 않다.
정부가 현대상선을 정상화시키려고 마음 먹었다면 약속한 초대형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해주길 바란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위기를 넘기고 있는 해외선사들을 벤치마킹해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다양한 경쟁력 제고 방안도 필요하다. 이번 위기야말로 불황에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체질을 만들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