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시사보도프로그램을 통해 이른바 ‘이병헌 협박녀’ 중 한 명으로 오인 받은 여성모델에게 방송사 등이 정정보도와 함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모델 신모씨가 MBC와 외주제작사, 프로그램 피디 등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 등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 영상은 원고가 출연한 패션관련 방송에서 무대를 걷는 원고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모자이크 처리가 이루어진 후 원고의 성명, 영상의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상태로 이 사건 방송보도에 삽입됐지만 얼굴 윤곽과 의상의 종류와 색, 걷는 자세, 머리스타일 구분이 가능했던 점 등을 종합해보면 시청자들은 영상 속 인물이 원고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모델 영상이 나오는 동안 ‘자료화면’이라는 자막을 표시했지만 ‘이병헌 협박사건’ 피의자 중 1명인 걸그룹 멤버를 지목한 사진과 영상이 나온 뒤 나머지 피의자 1명의 신원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또 다른 피의자는 모델 A양’이라는 자막이 화면 중앙 하단에 표시돼 있었다”며 “일반 시청자로서는 모델 영상이 ‘또 다른 피의자 모델 A양’에 관한 영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모델 영상이 보도와 무관한 자료화면이라는 표시도 없었던 점, 프로그램이 취재를 기초로 사실관계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인 점 등을 종합하면 결국 이 사건 방송보도 중 모델영상 삽입부분은 원고에 관한 진실하지 않은 사실적 주장 또는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며 “이와는 달리 원고를 ‘이병헌 협박사건’ 피의자로 암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지난 2014년 8월 MBC는 걸그룹 멤버였던 김모씨와 여성모델 출신 이모씨가 술자리에서 오간 음담패설을 담은 동영상을 이용해 합석했던 배우 이병헌씨를 협박한 사건이 발생한 뒤 시사보도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당시 방송에서는 이미 신원이 드러난 김씨에 대한 내용에 이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모델 이씨를 언급면서 고등학생이었던 신씨가 출연한 패션관련 오디션 방송프로그램과 신씨의 모자이크된 얼굴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방영했다.
이에 신씨는 자신을 ‘이병헌 협박녀’로 오인하게 해 피해를 봤다며 정정보도와 위자료 1억원을 MBC와 시사보도프로그램 외주 제작사, 프로그램 피디 등을 상대로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신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MBC 등이 정정보도와 함께 위자료 2000만원을 신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자료화면이라고 자막처리한 점, 신씨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점 등에 비춰 신씨를 특정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신씨가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