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교수가 쓴 전공서적을 표지만 바꿔 본인이 쓴 책인 것처럼 출간하는 이른바 '표지갈이'로 200명에 가까운 교수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수사는 교육계에서 수십년 동안 지속된 표지갈이 범행이 적발된 최초의 사례로, 전국 110개 대학교 182명의 교수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부장 권순정)는 표지갈이 서적 38권을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등재하거나 표지갈이를 허락한 교수 182명을 적발해 저작권법위반 혐의로 교수 74명을 불구속 기소, 나머지 105명을 약식기소 하는 등 총 179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14일 밝혔다.
추가 인세를 받고 표지갈이를 묵인한 원 저자인 교수 23명도 이번에 같이 약식 기소됐다. 해외 연수 중인 허위 저자 3명은 기소 중지했다.
불구속 기소된 교수 중 56명은 표지갈이 서적을 연구 실적으로 제출해 업무방해(국공립대학은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추가됐다.
이와 함께 검찰은 표지갈이 서적 38권을 출판한 4개 출판사 대표와 임직원 5명을 저작권법위반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제목을 변경하고, 허위 저자 추가해 발행 ▲제목은 그대로 두고, 허위 저자 가감해 발행 ▲허위 저자를 가감하고, 표지 디자인만 수정해 여러 차례 발행 ▲제목 변경한 후 원저자를 삭제하고, 허위 저자를 단독 저자로 발행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이번에 적발된 표지갈이 서적 38권은 모두 이공 계열 전공서적으로, 주로 대학 구내 서점에서 소량으로 판매됐다. 교수들은 표지갈이 서적이라는 점을 숨기기 위해 표지디자인 또는 책 제목을 일부 변경해 적발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러한 대학 전공서적 표지갈이 범행이 허위 저자, 출판사, 원 저자 등 3자 간 이해관계가 일치해 발생한 사실도 밝혀냈다.
허위 저자는 표지갈이 서적을 연구 실적으로 제출하거나 저자로 등재된 서적을 강의교재로 사용할 수 있고, 원 저자는 출판사의 불법을 묵인해 교재 출판 기회를 확보하면서 추가적인 인세를 얻을 수 있었다.
출판사는 허위 저자로 등재해 주는 대신 교재로 채택하도록 요청해 전공서적 재고를 처리하는 등 판매를 늘릴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국제 의학학술지 편집위원회 저자 등재 기준과 같이 국제 기준에 맞는 기준을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교육부 훈령)에 반영하는 방안 등을 법무부 클린피드백시스템을 통해 교육부와 제도 개선을 협의할 예정이다.
또 표지갈이 범행에 관여한 교수에 대한 후속 행정조치를 위해 명단을 소속 대학에 통보하고,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추가 수사를 위해 연구부정행위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운용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전국 110개 대학의 182명의 교수가 범행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일부 대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연구의 진실성은 출판 환경의 어려움이나 교수평가 기준의 일부 문제점 등 어떠한 이유로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가치라고 판단해 혐의가 인정되는 교수 전원을 기소했다"고 말했다.
제목을 변경하고, 허위 저자를 추가로 발행한 표지갈이 사례. 사진/의정부지검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