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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구태에 찌든 예산의 정치
입력 : 2015-10-22 오전 10:28:54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의 삭감과 증액 규모가 정해지고 최종 항목과 사업 내용이 정해지는 시한이 불과 한 달 남짓 남았다. 올해도 정치적 쟁점에 가려 예산 심의가 졸속으로 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매년 예산은 여야의 정치적 쟁점에 가려 법정시한을 넘기기 일쑤였고, 오히려 헌법이 정한 시한을 지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예산은 결과적으로 법정시한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산은 행정부가 편성해서 입법부가 의결함으로써 사업 규모와 쓰임새가 결정된다. 입법부의 권능 중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역시 예산이다.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로 부르는 이유다.
 
예산이 재정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감안하여 나라의 살림을 전체적으로 조율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산은 정치적 거래라는 본질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예산이 매년 법정시한인 12월2일까지 통과되는 예가 드물었던 현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예산은 재정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느 분야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투자규모와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따라서 예산은 사회적 합의가 녹아있게 마련이고,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가치관이 배어있다. 예산이 단순히 경제적 숫자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예산이 여야간 정쟁의 희생물로 전락할 수 있는 개연성이 상존한다는 데 있다. 예산에는 정치세력간의 거래의 산물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따라서 예산과 정국 현안이 얽히고 예산을 볼모로 정치적 타결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마냥 나무랄 수만도 없다. 예산을 입법 및 정치적 쟁점과 연계시키는 야당의 전략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예산의 정치경제학적 측면을 인정하는 것과 밀실에서 예결위 위원들의 배타적 영향력 아래 예산의 증액과 삭감이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현실과는 별개다. 주머니 쌈짓돈처럼 실세 의원의 지역구 선심성 사업 챙기기와 예결위원들의 지역구에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예산이 책정되는 현실은 매년 계속된다. 쪽지예산을 통하여 지역구민을 의식한 가시적 전시성 사업을 위한 예산이 배정됨으로써 예산이 자원의 적정한 배분과 사회적 형평에 기여하기는커녕 시장 교란과 자원배분을 왜곡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 상존한다.
 
더구나 내년도 예산은 총선을 의식한 지역구 예산 유치 경쟁으로 불요불급한 예산의 증액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정국의 블랙홀이 되면서 여야의 날 선 공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예산심의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새정치연합은 한국사 교과서에 소요되는 예산은 단 한 푼도 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누리과정 예산은 이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여야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야당은 역사교과서 문제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예산과 연계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새누리당은 역사교과서 예산을 예비비에서 충당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행정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 모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여권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진행되면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절차가 거의 생략되어 무리가 따르고 있다. 그런데 예산마저도 야당의 동의없이 예비비에서 충당하겠다는 발상은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함으로써 여야의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정치적 대척으로 내년도 예산안 심사 역시 정치적 갈등의 연장에서 심의됨으로써 부실과 졸속을 벗어나기 어렵다.
 
예산 심의가 국정감사와 연계되지 않는 부분도 시정되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예산집행에 대한 적절성 여부가 걸러지고 결과가 다음 해의 예산심의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정치적 이슈에 매달려 정쟁의 프레임에 갇히기 일쑤다. 예결위에서의 정책질의가 정책집행의 타당성과 사업의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정치적 쟁점과 여야의 힘겨루기의 장으로 전락한지는 오래다.
 
국회가 행정부가 제출한 방대한 예산을 세밀한 부분까지 분석하고 숨겨진 예산을 밝히는 데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 국회에 예산정책처가 있다 해도 기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방대한 예산을 심사하기 위한 국회의 제도나 관행, 정치문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예산은 국민의 감시 밖에서 매년 같은 구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
 
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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