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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믿고 의지하며 버텨왔지만, 돌아온 건 산더미처럼 쌓인 빚과 불신뿐이다. 함께 밤새 땀 흘리며 회사를 키워왔던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나고, 빈 책상에는 먼지만 쌓였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제조업 기반 산업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 대기업은 ‘고통분담’을 명분으로 중소 협력업체에 살인적인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1차, 2차 협력사는 버틸 여력이 있지만,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놓인 3차, 4차 협력사의 경우 사형선고와도 같다.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단가 인상은 물론 일거리도 늘려 주겠다던 대기업 담당 직원의 한마디에 작은 희망을 가졌지만, 재계약 시기가 되면 담당자는 인사 이동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진다.
최근 본지 탐사보도팀이 만난 A사는 국내 대형 조선사의 2차 협력사다. 2013년 계약 당시 일부 제품에 대해 무려 60% 가까운 단가 인하를 요구 받았는데, 이 같은 무리한 원가 절감은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득해 평균 10% 인하로 종결 지었다.
3년이 지난 올 4월 재계약 때 약 28% 추가 인하가 다시 강요됐다. 결국 A사는 버틸 수 없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단가 인하가 높은 품목에 대한 계약을 모두 포기했다.
뿐만 아니다. 어쩌다 떨어지는 프로젝트 역시 해당 기업 출신 임직원이 설립한 곳에 돌아가거나, 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벌 총수의 대표적 재산증식 방식인 일감 몰아주기가 전관예우 차원에서 퇴직 임원들에게도 배분되고 있다. 금전적 거래도 오간다.
억울한 중소기업들은 일방적 단가 인하와 OB출신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부당한 대우에 그저 속앓이만 할 뿐 하도급법에 따른 분쟁 조정이나 소송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의 제기를 하는 순간, 낙인이 찍힌 협력사는 조금씩 일감이 줄고, ‘대기업의 경제적 보복’에 결국 퇴출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힘을 합쳐 목표를 이룬다’는 사전적 의미의 ‘협력’은 우리나라 대·중소기업 하청 구조에선 말로만 존재할 뿐이다.
김영택 탐사팀장 ykim98@etomato.com